[스페셜1]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2]
2003-09-20
글 : 김혜리

好色男女의 장롱을 열다

색으로 드러낸 우아한 화려함 - 복식

소박하고 단아한 것은 사대부의 옷이고 화사하면 화류계의 옷이라는 통념은 100% 맞는 것일까? 누구나 입에 올리는 한국의 선이란 무엇일까? 한국적 색채는 또 어떤 것일까?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옷을 짓는 작업(의상팀장 김희주)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시대극의 장롱을 다시 열어보고 먼지를 털어내는 것으로 첫 바늘땀을 떴다. 이재용 감독과 정구호 디자이너가 합의한 컨셉은 ‘우아한 화려함’. 장식없는 과묵한 디자인의 한복만 우아한 것으로 치는데, 돈으로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명품족이 조선 시대인들 없었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경박하지 않은 화려함, 장인정신이 깃든 고급스러운 화려함이라는 면에서 굳이 빗대자면 ‘베르사체보다 헤르메스’에 근접한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정조 시대는 풍속도가 증언하듯이 여성의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통이 좁아진 시대였으며 몸매를 드러내는 게 유행이었다. <스캔들…>은 자료가 전하는 조선 후기 복식의 구조는 보존하면서 배색을 혁신했다. 시간의 더께가 앉아 색이 바랜 박물관의 한복보다는 한톤 선명한 색을 썼고, 전통적인 보색 대비를 쓰되 흔히 쓰이는 적색과 녹색 대신 청색과 보라를 나란히 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변용을 주었다. 실질적이면서도 판타지를 한겹 입히는 색채 콤비네이션이다. 사방과 중앙을 상징하는 오방색인 적, 황, 청, 흑, 백을 기본으로 삼지만 변주한 색깔이 등장한다. ”문화인류학자가 정부 지원을 받아 만드는 다큐멘터리도 아닌 만큼 현대인의 색감에도 들어맞는 색깔을 쓰려고 했다”고 감독은 설명한다. 못 보던 색의 등장이 다는 아니다. 사극을 볼 때마다 부인네들 네댓만 모여도 저고리와 치마를 합쳐 스무 가지 남짓한 색깔이 웅성거리는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정구호 프로덕션디자이너는 색이 다르면 채도를 맞추는 식의 팔레트를 썼다. 예컨대 조씨 부인의 누마루에서 좌의정 부인, 숙부인, 조씨 부인이 둘러앉은 장면을 보면 세 사람의 저고리는 모두 연두색 계열이지만 조씨 부인의 옷 색감이 가장 선명하고 숙부인의 연두색은 회색에 가깝게 창백하다.① 자주 등장하는 빨강의 경우도 귀부인 조씨의 빨강은 잘 먹은 심홍색인 반면 숙부인은 수줍은 듯 명도와 채도가 한 단계 떨어진 색이고 기생의 옷에 들인 붉은색은 갓 물들인 듯 형광빛이 도는 빨강이다.② 눈 밝은 관객은 깃과 고름의 색도 달리 쓰였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100여벌의 치마저고리는 수작업으로 짠 손명주, 모본단, 무명의 원단을 손으로 염색해 손바느질로 일일이 지어졌다. 개인의 스타일이 뚜렷하고 작품 중심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한복 명인에게 청을 넣는 대신 <정사>에서 작업한 팀이 제작을 맡았다. 역시 의상 고증에 신중을 기한 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는 걸고리 단추를 쓰지 않고 배우가 벗고 입을 때마다 바느질을 뜯는 의상을 썼다고 정구호 디자이너는 귀띔한다. 사실 당대의 쾌락주의자가 정말 입었을 법한 의상은, 호사스런 구경거리로 스크린에 디스플레이되기 전에 그것을 입는 연기자의 감정과 감각에 그럴듯함을 불어넣어주는 불가피한 사치이기도 한 것이다. 스탭과 배우가 세트가 아닌 조선 사대부의 집에 들어서는 기분을 느끼도록 방마다 주인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향까지 준비했다는 프로덕션디자이너의 기준으로는 사치라는 말이 당치도 않겠지만 말이다.

조씨 부인

애증을 감춘 붉은색 화려함

“과연 그런 답답한 여자에게서 쾌락을 얻어낼 수 있을까요? 옷 못 입는 것만큼 말도 어찌나 지루하게 하던지….”

유판서의 정실 조씨 부인은 미모와 권세와 불행을 힘으로 살아가는 여인이다. 첫사랑인 조원을 버리고 가문을 따라 시집왔으나 소생이 없어 낮에는 사대부 부인들의 사교계에서, 밤에는 애인들과 어울리며 무료한 생을 소모한다. 시문에 능하고 병서를 즐겨 읽는 그녀는 패션리더이기도 하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세 계절이 흘러가는 영화 속에서 조씨 부인은 화려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품위있는 자태를 유지한다. 붉은색과 보라색이 무척 잘 어울리며 주홍을 입어도 연주홍부터 진주홍까지 세련된 감각을 자랑한다 그녀의 색깔은 여름에는 겉옷 아래 감춰져 있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바깥으로 드러난다. 위장한 애증이 노출되면서 화장도 진해진다. 호화로운 가체도 빼놓을 수 없다. 영·정조 치세는 집 한채 값의 가체가 유통되고 부잣집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맞이하러 일어나다가 가체 때문에 목이 부러졌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시대다. 조씨 부인은 나라에서 금지령이 내려지기 직전까지 버티는 여자다(반면 숙부인의 머리는 나라에서 권하는 쪽머리다). 조씨 부인의 가체는 얹은 모양이 변한다. 당시 여자들도 살다보면 틀어올리는 방법에도 여러 멋을 내지 않았겠냐는 추측에 의한 것이다. 미술팀은 자개 가구로 내실을 꾸민 조씨 부인은 진주를 좋아했을 것이라고 설정하고 화려한 진주 수공의 비치개를 부인의 머리에 꽂았다. 정구호 디자이너는 조씨 부인의 몇몇 옷가지에서 고증가 무관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문중제의 때 여성이 격식을 갖춰 입었다는 기록을 참조해 소복의 흰색을 바탕으로 하되 자수로 활옷의 화려함을 살려 주변의 남자들로부터 도드라지게 하는 옷을 입혔고,③ 밀실에서는 보랏빛 속옷을 내비치게 하기도 했다. 조씨 부인의 옷은 권력이다. 그녀에게 배운 대로 내실의 책략가로 변신한 소옥이 마지막에 걸친 옷은 그래서 조씨 부인의 옷이다.④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1]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2]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3]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4]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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