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충청도 사투리가 전해주는 투박한 심성. 송아지처럼 물기 어린 시선까지 마주하고 나면 이 사람, 거짓말이라곤 좀처럼 모르는 얼굴이다. 물론 그와 대화를 지속하려면 고통(?) 또한 따른다. 입을 열라치면 손 동작에 얼굴 근육까지 동원되기 때문이다. 귀를 열어두는 것만으로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흡사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하다. 녹음기 대신 캠코더를 들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차, 싶다.
극단 목화에 발디딘 뒤 15년 가까이 연극쟁이로 살아오다 3년 전부터 스크린으로 둥지를 옮긴 성지루(35)가 그 주인공. 요즘 그는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한 방송사 프로듀서는 얼마 전부터 브라운관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하고 있는 그를 캐스팅하려고 집 앞까지 찾아와 진을 치기도 했을 정도다. “추석 때 찾아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의 영원한 ‘사부’ 오태석 선생(극단 목화 대표)을 모시고 극단 목화의 공연장을 찾았다가 “세트를 만들고 있던 후배들이 안쓰러워 같이 밤샘 작업하고 왔다”며 피곤해하는 그를 붙잡고, 3년 동안 잃은 것과 얻은 것에 관해 물었다.
-극단 목화는 친정 같겠다.
=틈나는 대로 가서 연습하는 거 보고 오려고 한다. 이제는 전과 다르게 후배들한테도 소주 한잔 사면서 먹고 힘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좋다. 어제는 (오태석) 선생님 찾아뵙지 못한 게 찔려서 직접 연락드렸다. 안산에서 강의 끝나면 공연 준비하시느라 의정부까지 가야 하는데, 매번 지하철로 다니신다. 맘이 안 편해서 직접 운전해서 모시고 갔었다. 처음 하는 후배들이 끼어 있어서 그런지 세트 작업하는 데 낑낑대고 있더라. 그거 거드느라 밤 꼴딱 샜다.
-한 방송사의 추석 특집극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엄하시다는 아버지도 좋아하셨을 텐데.
=대전 집에 가서 아버지하고 같이 봤다. 근데 뭐 내용은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전화 때리시느라 바쁘셨다. 여기저기 “우리 아들 테레비에 나온다”는 말을 에둘러서 하시는데…. 충청도 양반들, 툭 던져놓고 아닌 척 잘하시잖나. 반바지 입고 계시다가도 아들 오면 옷 갈아입고서 인사 받으시는 점잖은 분인데 그러시니. 부모님이나나 주변분들은 아무래도 TV 나와야 뭐 한다고 생각하시니까. 못 했던 효도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와 드라마쪽에 출연하는 동안 무대는 거의 못 밟았다.
=올 봄에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한편 했다. 첫 공연하는데 미치겠더라. 왜 대학 때 공연하면서 드는 긴장 있잖나. 실수할까봐 대사 틀릴까봐 걱정돼서 우황청심환까지 사갔다. 국내에선 안 서 본 무대가 없는데 그랬으니. (주먹을 지그시 쥐고 가슴에 대더니) 이게 방망이질을 하는데 환장허겄데…. 실수 한번 하고나서야 나아지더라. 예전에 했던 게 헛건 아니었구나 싶었다. (웃음)
-경제적으로 윤택해졌겠다.
=이번에 대전 내려가서 박철수필름 멤버들하고 우연히 합석한 적이 있는데 그중에 한 친구가 선배님은 너무 비싸셔서…, 그러더라. 그래서 그랬다. 뭐가 비싸. 비싼 게 얼만데. 1년 전인가. 어떤 기자가 (내가 받는) 개런티가 많다고 썼는데, 그 기자 꼭 찾아낼 거야. 확인도 안 해보고 기사 쓰고.
-<바람난 가족>에 대한 애정이 클 것 같다. 코믹한 설정의 캐릭터가 아니었고, 또 이에 대한 관객 반응도 좋았고.
=임상수 감독님이 시나리오 쓸 때부터 내 이름 박아놓고 썼으니까 두말하지 않고 했다. 현장에서도 내게 맡겨주시니까 공부하게 만들어주시는 것도 좋고. 한데 연구한 거 못 써먹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새벽에 논현동 가구 거리를 걸어가는데 흰 수염에 목도리 하고 자기 혼자 나와서 막 떠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거 소스 삼아서 캐릭터에 비벼볼까 했는데 이번엔 <눈물> 때랑 다르더라. 그땐 술도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작품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이번엔 다른 상황들이 임 감독님을 괴롭힌 게 많아서 실제로는 제안을 못했다. 어디 감히 단역이 감독님한테 가서 이게 어떻구요, 할 수 있겠나. (웃음)
-<신라의 달밤> 촬영하면서 정광석 촬영감독에게 혼이 났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 서 있으라 했는데 왜 저기 서 있느냐고 면박 많이 당했다. 끝나고 나서 내 손 잡아주면서 고생 많았지, 다음에 또 하자, 그러시더라. 좀처럼 그런 말씀 잘 안 하신다는데…. 내 스타일이 모르면 아무나 붙잡고 가르쳐달라고 한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어딨나.
-이제는 영화가 입기 편한 추리닝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촬영장에서 실제로 추리닝 입고 다닌다. (웃음) 사실 <눈물>로 영화 시작할 때 많이 망설였다. 임 감독님이 내가 나오는 연극 3편 보고서 나보고 같이 일하자고 그러는데…. 해본 적도 없고, 자신도 없고. 게다가 감독님이 막말로 ‘애들이 떡치는’ 내용이라고 하니.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영화사쪽에도 ‘성지루 아니면 영화 안 찍겠다’고 하셨다니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면 못했을 거다.
-<바람난 가족>은 직접 대사를 만든 것도 많다고 들었다.
=수식어 걷어내는 수준이다. 문어체가 많으니까 전달이 쉽도록 어순을 바꾸는 정도. 반대로 전라도 사투리로, ‘난 니가 좋아야’라는 대사를 칠 때 쑥맥 같은 캐릭터면 앞에다 ‘아따거시기참말로’하고 뜸을 들이기도 하겠지만. 김수현 작가처럼 토씨 하나 틀리는 걸 원하지 않으면 물론 그렇게 가야지. 대신 그땐 뉘앙스라든지 감정적인 부분들을 좀 제한시키면 되는 거니까.
-조연배우 전성시대라지만, 정작 본인들은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을 듯하다. 코믹한 이미지로 굳어져가는 것도 그렇고.
=(중간에 동석한 류해진을 가리키며) 애도 그렇지만, 우리가 범죄형 몽타주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류해진, ‘형 이야기나 하라’며 응수한다). 그래도 내가 갖고 있는 코드가 A, B, C가 있는데, 자꾸 C코드만 쓰려고 하니 속상하다. 왜 이런 시나리오만 들어오나 싶기도 하고. <휘파람 공주> 같은 경우는 캐릭터를 좀더 사실적으로 가져가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종전의 이미지만을 원하시더라. 그 전엔 대놓고 이기동(70년대 인기 코미디언)식 액션을 요구하는 감독도 있었다. (웃음) 사기꾼 연기한다고 치면, 1시간30분 내내 도끼빗 들고 설칠 필요없다. 도입부만 그렇게 가고, 그뒤론 어느 인간보다도 진실하게 가야 한다. 그래야 관객 입에서 저 나쁜 놈 소리가 나온다. 전엔 인간관계니 뭐니 해서 딱 자르지 못했는데 그래서 요즘은 코드가 안 맞으면 ‘못하겠네요, 미안합니다’ 그러려고 한다.
-촬영하면서 그런 고민이 불거진 적이 있을 텐데.
=제안은 좋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갑시다’고 한 적 없다. 현장 가면 감독하려는 배우들 많은데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감독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잘돼야 하는데. 안 그러면 영화가 잘 나올 리 없으니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그런 점에서 내 필모그래피에서 빼고 싶은 영화다. 사운드에 관해 문외한이지만, 스크린으로 보는데 이거 톤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부산 용호농장에서 촬영할 때는 빵빵빵빵 굴착기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는데도 그냥 슛 가더라. 연극하면서 연출도 해봤고, 나도 눈뜨면 드라마트루기 따지던 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결혼은 무횹니다’라는 대사에 강당에 있는 군중이 우는 리액션을 어떻게 줄 수 있는 건지. 뭐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유심히 보나. 호흡이 잘 맞는 배우도 있을 것 같은데.
=남들 할 때 잘 보는 편이다. 방송에선 풀숏 찍고 나서 4∼5번씩 클로즈업 따고 그러는데 박근형 선생님 보면 언제나 한결같다. 할 때마다 지칠 때도 있고, 오버가 될 때도 있고, 앞하고 안 맞을 수도 있는데, 항상 똑같은 게 대단하시다.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차)승원이나 (안)재욱이랑은 잘 맞는 것 같다.
-방송이라는 게 시간 싸움이다. 욕심이 안 채워지면 어떡하나.
=다시 가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 없다고 걷어버리고 끝내버리니까 속상할 수밖에. 대사 NG만 나지 않으면 그냥 괜찮다고 가버리니까. 내 연기에 대해서 ‘이만하면 됐어’라는 게으름이 몸에 배일까봐 무섭다.
-울고 웃기는 나름의 테크닉이 있을 것 같다.
=진실이면 된다. 진실한 생각, 진실한 행동거지면 진실한 연기가 나온다. (매니저를 두고) 이 친구가 날 잘 아는데 다른 모습이 많지 않을 거다. 술을 먹든 아니든 항상 그대로니까. 내 생활을 솔직하게 가져가려고 한다. 이게 아닌데라고 다른 식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싫고. 차라리 내가 손해보고 말지.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지혜가 <한겨레21>에 내가 알바로 영화 시작했다고 드라마틱하게 썼는데 그건 아니다. 영화하니까 돈이 조금 들어온 거지. 보험회사 다닌 것도 연극 때려치우고 한 게 아니라 시간 구애 안 받는 일이다보니 공연하고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했던 거다. 지방에 전화해서 미안한데 새벽에 가야겠다, 전화하고 자는 사람들 다 깨워서 계약서 쓰고 그랬던 때였다.
-보험 일도 그렇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겪은 것으로 안다. 그때 경험이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맞다. 도둑질 빼곤 다 해본 것 같은데. (웃음) 식당이나 편의점은 기본이고, 남대문에서 집수리도 해보고, 무면허로 파킹도 해봤다. 수색대 출신이라 산악 교관 하면서 대기업 신입사원들 뺑뺑이도 돌려봤고, 욕먹을 짓도 많이 했다. 연극하면서 차비 없어도 자존심 때문에 강남역에서 옥수까지 걸어다녔는데 나만 그랬던 건 아니고 다들 그 정도는 했던 것이고. 똥구멍이 찢어져도 즐거운 때였다.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내 영화 하나 하고 싶다. 꼭 주연이 아니더라도. 저거는 성지루 아니면 안 되는 영화. <넘버3>의 송강호처럼. 나보고 조폭만 한다고 그러는데 이왕 그렇다면 제대로 찔러죽이는 거 해보고 싶다. 쌈마이 그런 거 말고. 풀어지는 건 지금까지 많이 해봤으니까. 아니면 권선징악이라든가 인간적으로 질펀한 거.
-캐릭터와 일상을 혼동하는 적은 없나.
=역할 맡으면 일상생활이 거기 따라간다. 히스테리컬한 인물 하게 되면 말하는 것도 전투적으로 하게 되고. 그래서 와이프하고도 많이 싸운다. 그러다가 느물느물해지기도 하고. 결혼한 지 7년 됐는데도, 와이프가 헷갈려한다.
-버리고 싶은 게 있나.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 꽂히면 몇날 며칠 고민하고 그런 걸 좀 버렸으면 좋겠어. 다른 게 들어올 틈이 없으니까. 연극하면서도 대사 하나 때문에 한달 반 동안 끙끙대고 그랬으니까. 무대에서야 그래도 선생님이랑 선배들이 엄지손가락 치켜세워주는 걸로 감내할 수 있지만, 일상까지 그게 밀려오면 좀 버겁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스님이 됐으면 한다. 산에 가면 안성맞춤으로 항상 거기 있는 절에서 뭔가 비우면서 살고 싶기도 하고.
-배우로서 뒤집어써야 하는 굴레가 있을 텐데.
=뭐, 이런 거다. 한때는 실내낚시터가 유행했고, 다음에는 노래방이 그 다음에는 또 뭐가. 대중의 욕구들은 빠르게 변하는데, 배우로서는 시류 안 타고 나름대로 버티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 그 경계에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