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나는 날마다 깨우친다,<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이소연
2003-10-01
글 : 김혜리
사진 : 이혜정

따지고보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소옥은 참으로 딱한 처자다. 꽃봉오리 같은 이팔청춘에 아버지보다도 늙은 양반의 소실로 출가하면서 위안이라고는 “엄마 잔소리 듣는 것보다야 낫겠지”가 고작이다. 반가 법도를 익힌답시고 시집에 먼저 들어왔건만, 뭐하다 이제 나타났나 싶은 준수한 옆집 도령이 뒤늦게 구애를 하고, 그나마 도와주겠노라던 정실부인의 사촌이라는 위인은 덜컥 겁간부터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이 모든 수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옥 낭자는 마냥 즐겁다. 그녀는 날마다 깨우치기도 잘한다. 조선 사교계의 절정 고수 조원과 조씨 부인에게 서책에도 없는 사람살이의 이치와 음양의 섭리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무리 가혹한 사태에도 “정말이에요?” 한마디면 충격은 눈녹듯 사라지고 환한 이치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녀. 잠자리에 마주 누워 “네 어미의 정인이 바로 나였단다”라고 털어놓는 사내에게 “어쩜, 이런 인연이 있을 수가 있죠?”라며 동지섣달 꽃본 듯하는 표정은 압권이다. 세상에 그녀를 다칠 수 있는 흉기는 없다.

오디션을 거쳐 <스캔들…>에 휘말린 이소연(21)은, 소옥과 닮은 듯하면서도 총명한 기운은 몇배나 밝은 처자다. 닮은 것은 남의 말에 잘 속아넘어가는 버릇. 누군가 “나 학교 연못에서 돌고래 봤다!” 하면, “정말?” 하며 눈이 등잔만해진다. 마음만 내키면 배움이 일취월장하고, 이론보다 실기에 월등 강한 점도 소옥과 다르지 않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3학년 휴학 중인 이소연이 가장 눈을 반짝이는 수업도 연극사 개론 같은 노트필기 시간이 아니라 연기를 훈련받는 강의. 소리내어 표현할 수 있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실용주의자 이소연은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기 위주로 집중 수련받을 수 있을 듯한 연극원을 선택했고, 8월께에 일찌감치 입시를 마무리짓고는 여행도 가고 재즈댄스도 배우며 이곳저곳 팔랑팔랑 기웃거렸다. 대외활동이 학칙으로 금지된 2년을 보내고 나면 기회를 살펴 학교를 쉬고 직업적인 연기를 해보리라 궁리한 것도 신입생 시절부터였다.

학교식당에서 라면 먹다가 일반인을 등장시키는 생리용품 CF에 얼굴을 비추고, MBC 베스트극장 에서 나이보다 열살 많은 역으로 프로페셔널 연기 첫 경험을 치른 이소연은, “발음이 또렷하고 자세가 반듯하고 연기도 야무지다”는 인상을 감독에게 새기며 <스캔들…>의 오디션 문지방을 넘었다. 이소연이 소옥이 된 경위는, 배역이 그리 크지 않다보니 장면을 걸머지는 지구력보다 이미지에 따라 등용되는 많은 신인과 달랐다. 이 발칙한 풍속도 안에서 소옥이 차지한 자리는, 모험을 걸기엔 너무 컸다. 이재용 감독은 이소연이 소옥처럼 철부지 같거나 묘하게 섹시한 생김새를 지녀서가 아니라, 선배 배우들과 한신을 미덥게 맞들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춘 배우여서 낙점했다고 말한다.

이소연을 만난 것은 <스캔들…>의 언론 시사회 다음날. 아마도 난생처음일, 낯모르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냐고 묻자 “관심이 너무 적어서 탈인걸요?”라며 살짝 서운한 빛이다. 초록 쓰개치마 밑으로 동그랗게 치뜬 눈에 담겼던 넓은 세상을 그녀는 다 갖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조원이 옆에 있었다면 수제자를 부추겼으리라. “그래, 저자세를 취해서는 안 되는 게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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