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은행원 존(벤 채플린)은 어느 날 인터넷으로 러시아 신부를 주문한다. 공항에 도착한 여성은 미모의 나디아(니콜 키드먼). 그녀는 영어를 못하지만 순정 어린 육탄공세로 존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유리(마티외 카소비츠)와 알렉세이(뱅상 카셀)가 그녀의 생일날 들이닥치면서 분위기가 심상찮아진다.
■ Review인터넷으로 고른 배우자가 다짜고짜 벗어젖히고 덤벼드는 죽여주는 미인이라면, 황당&황홀한 남성 판타지의 손쉬운 실현이 수상쩍기도 할 것이다. <버스데이 걸>은 이 정체 모를 행운을 뒤잇는 새옹지마의 굴곡을 꽤 담백&신선하게 그린 로맨틱코미디다. 담백함은 할리우드식 느끼함을 걷어낸 영국적 분위기 때문이고, 신선함은 할리우드식 뻔함을 벗어난 개방적인 플롯 덕분이다. 런던 교외의 전원에 거주하는 건실하지만 내성적인 독신남은 마천루 한복판의 애덤 샌들러나 짐 캐리에겐 없는 어떤 자족적인 여유로부터 미소를 끌어낸다. 그렇다고 잔잔한 휴먼코미디로 빠지진 않는다. 러시아어밖에 못하던 사랑의 화신 나디아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차례차례 뒤집어가는 반전의 연속은 제법 스릴러적인 구도 속에서 속도감 있게 인물들의 관계를 재배치한다. 일련의 모험 끝에 맺어진 해피엔딩도 일상의 회복이 아니라 또 다른 미지와의 조우를 향해 열려 있다. 설렘과 얼떨떨함이 함축된 두 남녀의 투숏 엔딩엔 생동감이 박동한다.
가벼운 소품치곤 메시지와 설정의 규모도 크다. 안정된 사회적 자아에 갇힌 1세계 남성에게 정처없는 구소련 여성은 인터넷으로 구매한 ‘인터걸’과 다름없지만, 바로 그 타자가 육체와 언어를 새롭게 개방시킨다. 나디아에게 영어사전을 던져준 존이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로 향하게 되는 과정은 타자를 통한 자기 변전의 사례인 셈이다. 영국/러시아의 현실과 국경없는 인터넷 짝짓기 등은 앞으로 영화에 자주 등장할 법한 국제적 배경이 된다. 캐스팅도 그만큼 국제적이다. 벤 채플린은 전형적인 영국인을 네이티브로서 연기하지만, 그외 이방의 스타들은 러시아어를 익혀가며 낯선 영국 감독의 재능을 장식해준다. 백치미의 팜므파탈 니콜 키드먼은 작은 영화도 잘 고르는 안목을 드러내며, <증오>의 감독 마티외 카소비츠는 아예 배우로 전향한 듯하다. <돌이킬 수 없는>에서 모니카 벨루치의 애인임을 과시한 뱅상 카셀은 그 험악한 몰골로 니콜과 한패가 됐으니, 남성 관객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