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인터뷰] <실미도>의 감독 강우석
2003-10-23

"희생자 영령 도와 무사히 촬영 마쳤다"

지난달 말 영화 <실미도>(공동제작 시네마서비스ㆍ한맥영화)의 촬영을 마친 강우석(43) 감독이 22일 서울시내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강 감독은 6개월간의 강행군 끝에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활기찬 표정과 유창한 달변은 여전했다. 그는 "모든 제작진이 정말 최선을 다해 찍었으니 12월 24일 개봉을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감을 표시했으며 "영화인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영화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는 계획도 털어놓았다.

다음은 강우석 감독과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

-지난 4월 30일 영종도 앞 실미도에서 오픈 세트를 공개하며 기자들 앞에 나선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다.

=영화 소재가 실화인 데다 관련 생존자가 있는 만큼 부담스러워 언론에 노출을 삼갔다. `취재 거부'가 아니다. 보통의 영화였으면 예전처럼 `왜 우리 영화에 관심을 안 가져주느냐'라거나 `우리 영화 관련기사가 어째서 나오지 않느냐'는 등의 푸념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이제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사소한 일만 있어도 연락을 하겠다. 배우들도 언론사마다 인터뷰할 준비를 해놓고 있다.

-촬영 과정은 순조로웠는가.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영화에 달려들었나' 하는 후회를 많이 했다.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너무 고생했다. 드라마도 드라마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 볼 수 없는 장면이 많이 있다. 1차 편집한 필름으로 모니터 시사회를 해보니 `연출을 잘했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고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겠다'는 걱정만 하더라.

-사고는 없었나.

=큰 사고가 날 뻔 한 적이 많았다. 이 정도로 위험한 장면을 많이 찍으며 사고 한번 없었던 것은 실미도 희생자 영령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2일 오후 세트를 헐면서 위령제를 또 한번 지낼 예정이다. 촬영이 거의 끝날 무렵 이가 부러진 친구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의치였다고 하더라.

-어떤 장면이 가장 힘들었나.

=앞으로는 버스나 배 나오는 영화는 찍지 않을 생각이다. 실미도 대원들이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는 장면은 `스피드'의 메이킹 필름을 보고 버스 사방에 카메라를 설치해 찍었다. 밤바다의 배를 촬영하는 장면은 바지선을 띄워 조명을 설치하려 했으나 조류 때문에 흔들려 도저히 안되겠더라. 결국 지중해 몰타의 바다 세트장을 활용했다. 순수제작비가 82억원인데 상당부분 세트를 짓는 데 들어갔다. 예전 건물의 세트가 있었다면 훨씬 돈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내는 장면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편집본의 상영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2시간 12분이다. 촬영기간이 비교적 길고 제작비 규모도 크지만 촬영횟수는 70회에 그쳤고 필름도 11만 자밖에 쓰지 않았다. 폭파 장면 등 NG를 낼 수 없는 장면이 많아 대부분 한번에 OK를 냈다. 촬영한 분량도 덜어낸 것 없이 대부분 편집본에서 소화했다.

-연기자들의 고생이 많았겠다.

=배우들에게 "카메라에 들어간 장면은 자르지 않고 모두 영화에 쓸테니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정말 몸을 던지더라. 나도 그 약속을 지켰다. `고생하고 찍었는데 나중에 영화 보니 빠졌다'는 불만은 없을 것이다. 위험한 장면이 많은데도 모두 헌신적으로 연기해 "연기 잘하라"는 주문은 하지 않고 "몸조심하라"는 당부를 자주 해야 했다. 나중에는 배우들이 거의 특수부대원이 다 됐다.

-촬영 결과에는 만족하는가.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처럼 설경구의 `원맨쇼'를 보러 오는 사람은 실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며 몇몇 주인공보다 사건을 좇아간다. 드라마도 있고 비주얼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한다.

-여자 연기자도 등장하는가.

=사진 속의 여자, 인질이 된 소녀와 어머니, 인근 무의도에서 강간당하는 여교사를 합쳐 4명 나온다.

-실미도부대가 북한에 들어갔다면 임무를 완수했을 것이라고 보는가.

=그때의 증언을 들어보면 모두 날아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소대장도 부대원 모두 달리면서 움직이는 표적을 맞힐 정도로 철저한 인간병기가 됐다고 말한다. 김신 부대도 청와대 부근에 다 와서 경찰 때문에 붙잡히지 않았나. 그 대응으로 만든 부대였으니 침투했다면 아마도 주석궁에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전쟁이 터지고 역사가 바뀌었겠지.

-해외 배급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확정된 건 아니지만 월트 디즈니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확실한 판로가 없는 상태에서는 직배사를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쉬리>도 일본에서 관객은 많이 들었는데 미니멈 개런티 이외에 받은 돈은 별로 없다고 하더라. 일본에서는 설(구정)에 맞춰 개봉할 수 있을 것이다.

-강 감독이 연출에 매달리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올해 배급성적을 보면 시네마서비스가 CJ엔터테인먼트에 많이 밀렸다.

=CJ엔터테인먼트가 선전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시네마서비스가 부진했는데 CJ마저 안좋다면 우리도 내년에 힘들어진다. 한국영화가 잘 돼야 다른 회사들의 여건도 좋아진다. 삼성이나 대우 등과 경쟁하던 90년대 중반에는 경쟁회사를 누르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CJ엔터테인먼트와 평소에도 정보교환을 많이 한다. <위대한 유산>도 내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길래 CJ엔터테인먼트더러 "재미있으니까 꼭 해라"라고 권유했다.

-동료 영화인들과 뜻을 모아 영화 펀드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99년에 출범한 투자조합들이 내년이면 활동기간이 끝난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떨어져 자금이 고갈된 곳이 많다. 추가 투자가 없어지면 영화 제작편수도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스크린쿼터 축소론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극장주들이 "스크린쿼터를 지키려해도 국내영화가 모자란다"고 변명하지 않도록 현재의 제작편수를 유지해야 한다. 내년에 10편 정도 줄어든다고 보고 우리 영화 펀드로 10편 정도 만들면 현상유지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시네마서비스 관련 주주가 많은데 시네마서비스 영화에 주로 투자하는가.

=절반은 시네마서비스 투자영화에 돈을 대고 나머지는 기획은 좋은데 돈이 없어 찍지 못하는 영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여기 모인 돈은 회사 돈도 아니고 다 개인 돈이다. 정말 순수한 뜻으로 주머니를 턴 것이다. 이익이 나더라도 영화에 재투자할 것이다. 영화인들의 피땀 어린 정성이 모인 기금이니만큼 더욱 책임감을 갖고 영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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