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판타지와 드라마의 유연한 결합,<환생>
2003-10-28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 Story

일본의 어느 지방, 죽은 이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믿지 못할 사건이 일어난다. 그들은 죽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그리워한 사람 앞에 태연하게 나타난다. 후생성에 근무하는 헤이타(구사나기 쓰요시)는 고향에서 일어난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내려온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짝사랑하던 아오이(다케우치 유코)라는 여성이 있었지만 아오이는 슈스케라는 친구와 이미 사랑하는 사이였다. 슈스케는 돌연한 죽음으로 아오이 곁을 떠나고, 이후 아오이는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환생 현상을 조사하던 아오이와 헤이타는 간절한 그리움이 환생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아오이는 슈스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환생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조사하던 헤이타는 죽은 이들, 그리고 환생에 관련된 법칙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환생한 이들이 지상에서 3주밖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씩 헤이타는 슈스케의 환생에 집착한다. 한편, 인기가수의 콘서트 날이, 살아 돌아온 이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임을 알게 된 헤이타는 아오이 곁으로 달려간다. 그의 손엔 슈스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료가 있다. 슈스케는 돌아올 수 있을지.

■ Review

출판된 지 조금 된 소설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달빛 그림자>라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는 강, 운명의 강을 사이에 둔 어느 연인들에 대해서. 그리고 연인들에게 허락된 순간적 재회에 대해서. 이후 여러 소설을 썼지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 짧은 중편소설을 통해 가장 성숙된 문장력을 자랑한 적 있다. 영화 <환생>은 어떤 점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업그레이드한 것 같다. 저승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잠시 되돌아오지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또 다른 이별이 이승와 저승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실연(失戀)의 아픔이 배가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하나씩 죽은 사람들이 돌아온다. 몰골이 끔찍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고개를 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생전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을 뜨기 직전의 맑은 얼굴로 친구와 가족을 찾는다. 사연은 다양하다. 50여년 전에 실종되었던 소년이 어머니를 방문한다. 딸을 출산하다가 숨진 어머니가 다시 생명을 회복한다. 그녀의 딸은 어머니의 애정을 간직하려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생을 살고 있다.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숨졌던 무심한 가장이 숨쉬기 시작한다. 이지메로 고통받다가 자살한 학생이 장례식장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은 공포스럽다기보다 코믹한 감이 든다. 환생에 대해 조사하던 헤이타는 한 가지 의문을 발견한다. 대체, 어떤 이유로 죽은 이들이 삶을 회복하는 것일까.

영화 <환생>은 다른 일본영화 몇편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현재와 과거의 공존, 추억의 강력한 힘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러브레터>를, 한편의 꿈결 같은 만남의 시간을 그려낸다는 것은 <철도원>과 흡사하다. 살아 있던 시간 근처를 서성이는 이들에 관한 스케치에서는 <원더풀 라이프>의 그림자를 감지할 수 있다. <환생>의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공통된 특징이 있다. 죽음으로부터 귀환한 자들이 살아 있는 이들과 ‘비어버린’ 시간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들 사이에 10여년의 공백이 있다면 어떻게든 공유해보고자 노력한다는 것. 따라서 각 에피소드의 절절한 대사는 관객의 공감을 얻기 어렵지 않다.

판타지와 드라마의 결합. <환생>이 탄탄한 서사를 지니는 것은 두 가지가 유연하게 만나기 때문이다. 환생이라는 초자연적 모티브가 지나치게 부각되었다면, 영화는 코미디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혹은 드라마에만 치중했다면 진부한 신파로 흘렀을 가능성도 있다. 영화는 어느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에 대해 묘사하면서 군데군데 절제된 드라마를 심는다. 장애인인 탓에 손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모녀, 혹시라도 자신이 저승으로 떠난 뒤 아내가 외로움에 지치지 않을지 고심하는 남편, 자살의 궁지로 몰렸다가 영문 모른 채 환생한 학생이 이지메를 가한 친구에게 “살아돌아와서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는 것. 영화는 원작소설의 풍성한 결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극의 완급을 조절한다.

<환생>의 후반부는 강렬하다. 헤이타는 마음에 품고 있던 아오이를 위해 슈스케의 환생을 준비한다. 그러나 아오이는 마지막 순간 깨닫는다. 진짜 사모하던 사람은 헤이타였음을. 반전이 있고, 두 사람은 공연장을 만남의 장소로 삼고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이제까지 영화에 배치되어 있던 에피소드들은 단지 클라이맥스를 위한 장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환생>에서 숨어 있던 이야기, 즉 아오이와 헤이타의 사랑 이야기가 수면 위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차츰 형체를 잃어가는 인물이 “나 이제 사라져…”라며 울부짖는 모습은 멀쩡한 정신으로 지켜보기 힘들 만큼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 소수의 대중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흔치 않은 힘이다.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원래 대중영화에 식견이 많지 않았다. <월광의 속삭임>이나 <해충> 등의 전작은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얻긴 했지만 대중적 작품이라 보긴 어려웠다. <환생>에서 감독은 다수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객석에서 누군가와 손잡고 본다면 의미가 더 깊어질, 그런 영화.

초난강, 맞습니다 맞고요!

인터넷 시대에 스타들 이미지는 변형되기도 한다. 특정 이미지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부풀려져 원래의 이미지가 변해버리는 것. 합성사진의 위력이다. 구사나기 쓰요시(국내에선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의 경우도 같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원래 구사나기 쓰요시는 SMAP이라는 그룹 출신이다. 수려한 외모의 남성들로 이루어진 SMAP에서 활동하면서 구사나기 쓰요시는 솔로 가수로, 드라마 등에서 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다. <스타의 사랑>이라는 일본 드라마, <메신저> 등에 출연했던 것. 구사나기 쓰요시는 한국와 일본의 대중문화 교류의 시대에 발맞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유창하게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일본 연예인이다. 국내에서 솔로앨범을 발매한 적 있는 그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배우 겸 가수.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선 코믹한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영화 <환생>은 구사나기 쓰요시로선, 연기력을 과시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차분하고 감성적인 연기를 보이고 있다.

<환생>에선 여배우도 눈에 띈다. 아오이 역의 다케우치 유코는 깔끔한 외모의 여배우다. 다케우치 유코는 드라마 <하얀 그림자> 등에 출연했고 영화 <별에 소원을>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환생>에서 다케우치 유코는 구사나기 쓰요시와 호흡을 맞추어, 사연 많은 여성 캐릭터로 분한다. 영화 막바지의 그녀의 연기는 쉽게 기억에서 털어내기 어려울 만큼 인상 깊다. 한 사람 더 있다. ‘루이’라는 신비의 여가수 역으로 분한 시바사키 고. 원래 시바사키 고는 <배틀로얄>이나 <고> 등의 영화에서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소화한 적 있다. <환생>에서 그녀는 대사가 많지 않은 대신, 뛰어난 노래 실력을 보인다. <달의 물방울>이라는 곡은 이후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고, 영화에서 처음 “널 좋아해”라는 고백과 함께 삶과 죽음으로 갈라서야만 하는 비운의 연인을 위한 연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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