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목격자>
2003-10-28
글 : 박은영
■ Story

일라이 워먼(알 파치노)은 한때 미국 쇼비즈니스를 주름잡았지만, 이젠 한물간 PR 로비스트로, 불법 구금된 외국인 이민자의 석방을 촉구하는 자선행사를 준비 중이다. 오랜 친구이자 고객인 캐리 로너(라이언 오닐)는 행사 참석의 조건으로, 수감돼 있는 애인 질리(테아 레오니)를 빼내달라고 부탁한다. 일라이는 질리에게 이끌려 마약 파티장에 들르게 되고, 그곳에서 PDA를 갖고 나온 질리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 Review

너희가 뉴욕을 아느냐? 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이는 마틴 스코시즈나 우디 앨런 정도일 테지만, TV로 범위를 넓혀본다면 <섹스 & 시티>의 대니얼 앨그란트도 빠뜨릴 수 없다. <섹스 & 시티>의 진정한 주인공은 ‘뉴욕’이 아니었던가. 그가 백악관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의 작가 존 로빈 베이츠와 손잡고, 뉴욕의 정계와 연예계에 관한 미스터리스릴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는 완벽한 조합으로 보였다. 알 파치노, 킴 베이싱어, 테아 레오니, 라이언 오닐까지 합류한 캐스팅은 <목격자>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목격자>가 뉴욕을 보여주는 방식은 ‘너무 많이 안 남자’의 불운한 하루를 따라잡는 것이다. 순수한 명분으로 기획한 자선파티에 뉴욕의 실력가들을 불러모으겠다고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 에스코트했던 여자가 아편굴에서 들고 나온 PDA(그 안에 담긴 뉴욕 거물들의 비밀) 때문에 목숨을 잃자, 디지털 시계가 카운트다운을 해보이며, 그에게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목격자>는 많은 걸 숨기고 있는 스릴러가 아니라 예정된 파국을 향해 걸어가는 한 남자에 대한 휴먼드라마라는 편이 낫다. 전설적인 로비스트 바비 자렘이 모델인 이 이야기에는 그가 주도했다는 ‘I ♥ NY’ 캠페인,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마틴 루터 킹, 케네디와 교분을 쌓았던 주인공은 60년대의 향수에 젖어 한탄한다. “도시가 변했다”고. 멀쩡한 패션쇼룸이 밤이면 마약 섹스 파티장으로 둔갑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돌변하는 곳이 지금의 뉴욕이라는 것이다.

기대가 높았던 관객에게 <목격자>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뉴욕의 어제와 오늘을 순수와 부패로 이분한 테마가 진부한데다 정치적 갈등과 속임수를 그린 기존의 스릴러물과 차별되지 않아 ‘너무 많이 본 영화’라는 인상을 떨치기 힘든 탓이다. 그러나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선의와 야심에 동참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목격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신념과 배신감과 불안이 뒤엉킨 혼란스런 24시간을 살아 보인 알 파치노의 연기는 그가 거쳐온 캐릭터의 클리셰, 그 총집합으로도 보이지만, 그래서 팬들에겐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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