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방언의 충돌을 통해 정치와 풍자를 이루다,<황산벌>의 언어
2003-11-06

모든 영화에는 언어가 있다. 그러나 정작 언어가 중요한 주제가 되는 영화들은 별로 많지 않다. 1964년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이 영화는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가 꽃파는 아가씨 일라이자의 언어를 수개월에 걸쳐 고쳐줌으로써 그녀를 상류사회로 진입시킨다는 내용으로, 음성학적 지식과 활동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영화 <황산벌>의 주제가 <마이 페어 레이디>와 같이 언어나 언어학은 아니지만, <황산벌>은 언어가 중요하고 특별한 역할을 하는 흔치 않은 영화들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서기 660년,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과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일전을 벌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백제인들이 호남 방언을 사용하고 신라인들이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것으로 연출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언어공동체의 맥락과‘거시기’

<황산벌>에서 사용된 오늘날의 호남 방언과 영남 방언은 과거의 백제어와 신라어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이 점에 대해서는 이 글의 뒷부분에서 다시 언급한다) 영화에 나타난 재미있는 방언의 사용에 대해 살펴보자. 백제의 의자왕(오지명)과 계백(박중훈)과 군사들이 사용하는 호남 방언에는 ‘잉(응), 했당께(했다니까), 야(예), 나가(내가), 니가(네가), 쪼께(조금)’ 등의 표현이 있어 ‘문둥이(경상도 사람), 더버(더워), 억수로(매우), 몬하다(못하다)’ 등의 표현이 있는, 김유신(정진영)과 신라 군사들이 사용하는 영남 방언과 구별된다. 이러한 표현상의 차이 이외에 영남 방언에는 표준어와 호남 방언에는 없는 성조(음의 높낮이)가 있다. 그리고 (일부) 영남 방언의 특징인 쌍시옷 발음의 약화가 있다. 예를 들어, ‘쌀’을 ‘살’로 발음하고 ‘싸움’을 ‘사움’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김유신이 군량미를 당군한테 보급하는 신라군의 임무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의 발음은 ‘살배달’이다. 반면에 계백은 ‘쌀배달’이라고 쌍시옷을 분명하게 발음한다.

영화 초반부에 백제 군사 두명(김승우, 신현준)이 첩자로 신라군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들은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호남 방언을 숨기고 영남 방언을 사용하지만, 무의식중에 ‘거시기, 했당께’ 등 호남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정체가 탄로난다. 언어가 신분을 드러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의 구약(사사기 12:6)에 ‘shibboleth’라는 말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길르앗 사람들이 그들의 적인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이 단어의 발음을 시켜보고, 어두의 ‘sh’ 발음(‘십볼렛’)을 제대로 못하고 ‘s’로 발음(‘씹볼렛’)을 하면 에브라임 사람으로 간주하여 죽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shibboleth’라는 영어 단어는 국적, 계층, 소속 집단의 특징을 이루는 말투나 말버릇을 가리킨다. 영화에서 신라군 속의 백제군 첩자 혹은 백제군 속의 신라군 첩자는 ‘쌀’/‘살’의 발음의 차이로 식별해낼 수 있을 것이니 이 단어는 하나의 ‘십볼렛’이 될 것이다.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의 언어(호남 방언)와 신라의 언어(영남 방언)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말로 ‘거시기’가 나온다. 백제의 의자왕, 계백, 그리고 군사들의 말 속에 수없이 나오는 ‘거시기’는 국어사전에 대명사와 감탄사로 올라 있는 단어이다. 대명사로서의 ‘거시기’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며, 감탄사로서의 ‘거시기’는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예: 저, 거시기, 죄송합니다만)이다. 이 말은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큰사전에 모두 방언이 아닌 표준어로 올라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호남 방언에서 많이 쓰인다. <황산벌>에서 ‘거시기’는 주로 대명사로 쓰인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왕은 계백과 독대하여 술을 몇 차례 권하고 어렵게 입을 연다. “니가 거시기해야겄다.” 계백은 이 말을 알아듣고 “거시기하기 위해” 일어난다. 그리고는 그의 처자를 칼로 베고 황산벌로 나아가면서 군사들에게 죽기로 싸우기 위해 갑옷을 벗지 못하도록 꿰맬 것을 지시하면서 “갑옷을 거시기해라”라고 한다. 신라군과의 일전을 앞둔 백제군을 모아놓고 계백은 소리친다. “황산벌에서 머시기하기까지 갑옷을 거시기해라!” 신라군 첩자가 이 말을 엿듣고 김유신에게 보고하자 신라군은 ‘거시기’를 암호라고 판단하고 이것을 해독하고자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황산벌 전투 뒤 살아남은 백제군 무명 병사는 그저 거시기로 지칭된다.

‘거시기’를 다른 말로 바꾸자면 ‘그것’, ‘그이’, ‘그 일’, ‘그 사람’ 등이다. 이러한 말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사용 맥락이 필수적이다. 그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의미를 전달하고 이해할 수 있다. 계백은 풍전등화인 백제의 운명 앞에서 의자왕이 부탁한 ‘거시기’를 이해할 수 있었고, 5만 신라군 앞의 5천 백제군은 황산벌에서 ‘머시기’하기까지 싸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신라인들은 백제인들과 맥락을 공유하지 않으므로 백제인들의 ‘거시기’를 알 수 없었다. 이렇듯 그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 언어 사용의 맥락이 필수적인 표현을 직시적 표현이라고 한다. 호남 방언뿐 아니라 모든 언어에 직시적 표현들이 있고, 그중에는 ‘이것, 그것, 저것’과 같은 지시대명사 표현, ‘이, 그, 저’와 같은 지시사 혹은 지시관형사 표현, ‘나, 너, 그’와 같은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 표현, ‘여기, 저기’ 등 장소 표현, ‘지금’과 같은 시간적 표현, ‘앞, 뒤, 오른쪽, 왼쪽’과 같은 상대적 표현, ‘가다, 오다’와 같은 움직임의 방향을 화자의 입장에서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다. 많은 문장이 이러한 직시 표현을 포함하므로 맥락은 언어의 이해에 필수적으로 중요하다.

완전한 언어로서의 사투리

영화 <황산벌>에는 방언의 사용이 질펀한 욕설과 버무려져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의 초반부터 의자왕이 ‘씨발’을 연발하는 것이 신분과 언어의 불일치에서 오는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결전의 순간에 앞서 신라군과 백제군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악다구니를 떠는 광경이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모든 언어에서 욕설의 재료는 성기와 성행위, 배설물, 죽음을 포함한 신체의 상해와 관련된 저주이다. <황산벌>에서는 ‘씨발’과 ‘씨벌놈아’가 노래의 장단을 맞추듯 사용되고 ‘똥물에 튀겨 죽일 놈’, ‘누시깔의 먹물을 뽑아버린다’는 등의 협박이 난무한다(죽은 사람의 목을 베는 형벌인 ‘육시’와 관련된 ‘육시랄’이라는 욕설도 있다). 그러나 <파이란> <비트> <저수지의 개들> <좋은 친구들>에서처럼, 어조사처럼 사용되는 거친 삶의 세계에서 이 말들은 더이상 욕설의 효과를 갖지 않는다. ‘씨발’과 ‘fuck’은 그저 말과 말을 연결해주는 고리의 역할을 할 뿐이다. 신라군과 백제군 사이에서도 말보다 더 자극적인 욕의 수단이 필요했고 그들이 사용했던 수단은 몸짓 언어였다. 즉, 성행위를 상징하는 손모양이나 자세를 연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욕은 언어와 달리 어느 정도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다. 문화에 따른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의 김병현이 연출했던 가운뎃손가락 치켜들기는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서양에서 더 심한 모욕감을 주는데, 언어보다는 그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훨씬 쉽다. 같은 손가락이라도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든 것을 욕으로 간주하는 문화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영화에서의 방언 사용문제로 돌아와 언급할 것은 방언과 표준어의 관계이다. 표준어는 지역적인 언어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적 역할 이상을 수행할 수 있다. 즉,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일라이자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표준어의 사용이 신분상승과 연관될 수 있다. 감정적 측면에서 표준어에 대해 “듣기 좋다, 부드럽다”라고 느끼고 방언에 대해 “상스럽다, 촌스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일반적으로 여성이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 방언의 사용이 간혹 그 내용과 관계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과 연관된다. 그러나 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방언은 하나의 완전한 언어이며 의사소통의 훌륭한 수단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표준어의 사용은 권장되어야 한다). <황산벌>의 후반부에 이러한 사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계백이 자신의 처자식을 칼로 치는 회상장면에서 계백의 처(김선아)가 계백을 향하여 호남 방언으로 길게 대꾸하는 말은 영화 앞부분에 나왔더라면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진행을 통하여 이미 호남 방언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이 심각한 상황의 호남 방언은 표준어와 똑같이 의사소통을 위한 하나의 훌륭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비장함과 처연함을 절실하게 전달한다.

백제인들의 호남 방언 사용과 신라인들의 영남 방언 사용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는 고대의 백제와 신라의 언어가 달랐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단,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은, 언어는 변하게 마련이고, 과거의 언어는 오늘날의 언어와 다르다는 점이다. 1300년 이상을 거슬러올라가지 않더라도 불과 500여년 전인 15세기의 훈민정음 서문에 있는

라는 표현을 보면 과거의 언어와 현대의 언어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언어는 오늘날의 영호남 방언과 아주 달랐을 것이다.

매우 부족한 현존 자료로 인하여 한국어의 기원과 고대 언어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고 이견도 많으나 주류의 학설을 따르자면, 고대 한반도의 언어들은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고구려어로 대표되는 부여계 제어와 신라어와 백제어가 속하는 한계 제어의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북한 학계에서는 이러한 계통 구분과 언어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백제어란 백제의 피지배 계층의 언어이고 고구려 출신들의 백제 지배층은 고구려어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백제의 의자왕과 신하들이 사용하던 언어(부여계)는 백제군 졸병들이 사용하던 언어(한계)와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백제의 멸망기에는 언어가 통합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 이후 신라어가 근간이 되어 한반도의 통일된 언어가 형성되었으니, 호남 방언은 신라어에 (혹은 신라어를 이어받은 고려어에) 어느 정도의 백제어 요소가 침투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기층 언어인 백제어에 신라어의 요소가 침투하여 호남 방언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국어사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이러한 문제들은 여기서 접어두자. 이렇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고대 백제와 신라의 언어 상황을 영화에서 달리 세밀하게 재현할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나에게 <황산벌>은 호남 방언과 영남 방언을 한 영화에서 구별하여 들려줌으로써 두 방언의 차이를 체험하게 해주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 영화 <돈 세이 워드>에서 미국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영국 배우 숀 빈이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이를 대조적으로 들려준 것과 비견된다.

어떤 영화를 언어든 과학이든 하나의 지적 관점에서만 보는 것은 권장할 만한 영화감상법이 아니다. 영화의 궁극적 목적은 재미와 감동이며, 관객의 입장에서는 일차적으로 그것들을 추구하면 된다. 영화 <황산벌>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고, 정치와 외교의 풍자가 있고, <패왕별희>에서와 같이 패자에 대한 연민이 있고, <글래디에이터>나 <갱스 오브 뉴욕>에서와 같은 처참한 싸움의 장면이 있고, 또한 <해리 포터>에서와 같이 게임과 현실이 혼합된 위험한 장기(체스) 시합과 <기사 윌리엄>에서와 같이 고대 속의 현대판 군중 응원의 모습이 있다. 이것들 모두가 즐길 만한 것이지만,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황산벌>의 언어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영화를 감상하고 반추하는 것이 영화에 대한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하는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범모/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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