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인터뷰]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
2003-11-11

"`징한' 여자 만나 지지고 볶다가 나온 느낌"

'불혹의 나이에 액션 배우 데뷔', '마흔 넘어 처음 해본 파마', '체중 10㎏ 감량'….분명 이전과 100% 다른 모습이지만 배우 최민식에게 '변신'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려면 왠지 꺼려지는 게 있다. <넘버 3>의 폭력 검사에서 <쉬리>의 테러부대원, <해피엔드>의 아내 살해 남편, 그리고 <파이란>의 3류 건달 강재와 <취화선>의 화가 장승업까지. 그것은 최민식이 '연기 변신'이라는 진부한 말을 쑥스럽게 만들 만큼 새 역할로 관객을 압도하는 진짜 배우인 까닭인 듯하다.

10일 오후 영화 <올드보이>의 시사회가 끝난 후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에서 만난 최민식은 작품을 마친 소감을 묻자 생뚱맞은 '사랑'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가 막 헤어진 기분이라는 것.

"새 작품 할 때마다 각각 다른 열애에 빠졌다 나온 것 같아요. 새로운 생각으로 영화에 뛰쳐들어가 한동안 살다가 나오는 것이죠. 이번에는 좀 '징한' 여자 만나 지지고 볶고 난리 치다가 나온 셈이네요."

<올드보이>는 15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던 평범한 남자 대수(최민식)와 그를 가둔 뒤 감시하고 관찰해온 우진(유지태)의 심리 게임을 그린 미스터리물. 술 먹고 취객과 시비나 붙던 이 철없고 평범한 남자 대수는 누가 왜 가뒀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언제 풀려날 지도 모른 채 15년 동안 TV와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방에 감금당했다가 탈출하고 복수극을 시작한다. 복수를 시작하면서 만나 그가 만나게 되는 여자는 정체 모를 젊은 여자 미도(강혜정).

극단적 상황에 처한 주인공으로 피 튀는 복수를 벌이는 만큼 영화 속 연기는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을 법한 장면도 많이 포함돼 있다. 최민식은 대수의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기 위해 산낙지를 삼키기도 했고, 영화의 말미에는 칼로 자신의 혀를 자르는 모습도 들어 있다.

가장 어려웠던 장면을 꼽아달라고 부탁하자 "보시다시피 한 장면 한 장면 쉬운 것이 없었다"며 대답을 시작했다. "진짜 괴로웠던 것은 낙지 먹는 장면이었어요. 혀 자르는 거야 소리만 지르면 되는 것이니까 목만 아프면 그만이거든요. 제가 삼킨 문어 보셨죠? 낙지라기보다는 문어 수준이라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낙지 음식점들로 유명한) 무교동에는 근처에도 안 갑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후반부 대수가 설원에서 미도를 만나 사랑한다는 얘기를 듣는 장면을 꼽았다. 두 사람 앞에 펼쳐진 산맥처럼 이들의 인생이 잘 표현돼 있다는 설명.

출연하는 영화마다 관객들을 좀처럼 실망시킬 줄 모르던 그이지만 1년 여를 투자해 완성해낸 이 영화는 스스로에게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조감독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언급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 그에게 <올드보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묻자 처음 비유했던 '사랑' 얘기로 돌아왔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자 만큼이나 영화는 매번 다른 의미가 있어요. 분명한 것은 이번 여자도 단순히 엔조이(Enjoy) 상대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가슴깊이 사랑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여자일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이며 영화사 쇼이스트가 제작한 첫 작품인 <올드보이>는 21일부터 관객을 만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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