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은 정말 가슴이 넓은 남자예요.” 함께 작업한 경험이 어땠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최민식을 향한 유지태의 찬사가 쏟아진다. “제가 <거울속으로> <내츄럴시티> 등 다른 영화 때문에 <올드보이> 촬영하면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어요. 조용히 절 부르시더니 손을 꼭 잡아주시는 거예요. 그 손이 너무 따뜻했고 엄청난 힘이 됐어요. 나도 나중에 누군가의 손을 저렇게 잡아줄 수 있었으면 했어요.” 쑥스러운지 최민식은 “아, 그 손 잡아준 거는 오늘 니가 술 한잔 사라, 그런 뜻이었지”라며 허허 웃는다.
잠시 뒤 “<올드보이>는 유지태의 영화예요”라며 역공(?)에 들어가는 최민식. 예상대로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칭찬을 그칠 줄 모른다. 이럴 때 인터뷰하는 입장은 난감하다. 이런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영화홍보를 위한 의례적 말로 비치기 십상이다. 도리없는 일이다. 14살 나이 차이가 나는 배우, 존경하는 선배와 믿음직한 후배가 기자 앞에서 서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진심은 일상에서 묻어난다. “지태야, 밥 먹었냐? 나 여기서 자장면 하나 때렸는데 너도 지금 가서 자장면 하나 때리고 와라”라고 말하는 소탈한 인사가 최민식이 유지태를 대하는 친밀감이라면, 술만 마시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취해 잠이 드는 최민식을 번번이 등에 업는 것이 유지태가 최민식을 대하는 살가움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둘이 서로 쳐다보다 웃음을 참지 못할 때, 그들은 정말 상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올드보이>가 이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라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마음이 통하는 두 배우지만 알려진 대로 이번 영화에서 그들은 철천지 원수로 나온다. 유지태가 연기하는 이우진에 의해 15년간 감금됐다 풀려나는 오대수(최민식), 영화는 필연적으로 두 사람의 복수극을 충돌시킬 수밖에 없다. 그들의 두눈에 상대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이글거리는 순간을 영화는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 잠시 쉬는 동안 장난을 치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두 사람이 “자, 갑니다”라는 사진기자의 한마디에 렌즈를 향해 두눈을 부릅뜬다. 살기가 느껴지는 표정, 조금 전 아이 같던 눈빛이 순간 자취를 감춘다. 문득 장난기 어린 소년의 눈을 가진 최민식과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한 유지태가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