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이 `머저리` 같은 남자들, <미저리>
2003-11-13

강아지 부르듯 남자가 손짓을 했다. 영화관에서 나오던 사람들이 킬킬거렸다. 나를 ‘미저리’라고 부르는 남자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캐시 베이츠의 연기와 집착에 대해 생각하며 발걸음을 내디디던 나는 남자의 철딱서니없는 장난에 황량한 바람이 일었다.

당시 ‘가로왕창뚱땡이’인 나를 보고 ‘미저리’라고 단세포적으로 부른 것 같지만 그 영화의 끔찍한 장면이 얼굴에 확, 쏟아져내렸다. 폭력, 피, 고함소리를 유난히 싫어하는 나를 ‘미저리’라 부르며 좋아하니 잔혹의 모서리에 찔린 기분이었다. 남자는 남의 기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미에 걸신들린 듯 ‘미저리, 미저리’ 하며 신이 났다. 아, 이 ‘머저리’ 남자를 어쩌지요?

‘내 인생의 영화’ 하면 유별났던 남자들이 떠오른다. 그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만 줄줄이 고드름이다. 남자 복이 없든지 영화 복이 없든지 둘 중 하나다. 아니, 두 가지 다 그 모양 그 꼴인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나온 뒤 헤어진 경우도 있고 그 잔상의 풍경이 마음을 괴롭혀 헤어질 결심을 할 때도 있었다.

<닥터 지바고>를 본 건 1978년이다. 흥건한 눈물을 애써 참고 있는데 남자는 영화 보는 동안 내 눈치만 살피는 기색이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영화를 보러 온 건지 아니면 컴컴한 영화관에서 호시탐탐 나를 염탐하러 온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대충 짐작하지요? 시절이 시절인지라 남녀간에 손 한번 잡으려면 통상 1년 정도는 연애를 해야 했던 시절이니까. 그런데 평소 온순하고 말없던 사람이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예고도 없이 ‘꼬챙이’로 변신해 돌격해왔다. <닥터 지바고>가 아니고 그냥 영화에 대해 마구잡이로 찔러댔다. “사극 찍는 데 연탄재가 굴러다니고, 옷소매 사이로 시계 찬 게 보이지 않나, 하여간 영화하는 사람들 아직 멀었어요. 남이씨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한 발견을 특별히 누설하는 기분으로 열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남자의 돌변에 놀라 ‘아니, 이 남자가?’ 하는 마음만 들었다. 진한 감동의 여운에 흠뻑 젖어 있는데, 라라의 테마가 귓가에 맴돌고 있는데 그런 먼 나라 말들이 들어올 리 만무다. 어이가 없어서 멀뚱히 쳐다보니 자기 말에 감탄이라도 한 줄 알고 상하좌우 정신없이 찔러댔다. <닥터 지바고>의 장면이나 <라라의 테마>가 아수라장이 되는 기분, 정말 꽝이지요.

심지어 <베티블루 37.2°>를 보고 나온 한 남자는 침을 퉤, 뱉듯이 ‘뭔 영화가 이래!’ 하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돈만 버렸네, 시간 아깝네’ 하며 중얼거렸다. 이 ‘시들남’은 모든 걸 다 하찮게 보는 버릇이 있더군요. 별쪼가리에도 감동받는 나와 인연을 이을 수 없는 건 당연지사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포스터가 ‘넌 뭐야! 뭐가 불만이야!!’ 하는 소리에 위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화만큼 강렬한 그 포스터 다 아시죠?

코미디영화를 보러 가서 혼자 뒤집어지던 남자도 생각난다. 희한한 웃음을 내 귀에 꽂아 경련을 선물한 남자. 그 이상한 웃음소리는 세월이 지난 지금 떠올려도 의아하다. 평소 음성이 참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웃는 소리가 어찌나 요사스럽고 천박하던지. 평소 소리없이 웃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그 괴이한 웃음소리를 감추느라고 벙긋거리기만 했는지도 모르지.

다들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무차별 기습공격을 하니 낸들 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난 왜 이런 허망한 일만 겪는 운명이지? 평온한 일상처럼 편한 영화데이트가 왜 오지 않는 거지? 새삼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니 흘러간 청춘이 아깝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이상하게 내게는 운명처럼 이별의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이상한 일도 다 있지요? 환상적인 데이트나 평생 잊지 못할 데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수수하고 소박한, 그런 남자 어디 없어요?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음에 남는 영화 한편, 같이 보실까요?

박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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