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미스틱 리버> 뉴욕 시사기 ‘범죄 뒤에 남은 자들의 슬픈 인연’
2003-11-18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배우 숀 펜, 팀 로빈스를 만나다

프로페셔널한, 품위있는, 우아한, 배우를 위하고 존중할 줄 아는…. 올해 73살을 맞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이야기할 때 배우들이 자주 사용하는 수식어다. 지난 10월 뉴욕 시사회에서 첫 소개된 <미스틱 리버>는 이스트우드가 24번째 연출한 작품으로, 그가 직접 출연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빈틈없는 이야기 구조와 일급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이 영화는 연기는 물론 전체적인 조화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수식어들이 아깝지 않다.

보스턴이 배경인 이 작품은 어릴 적 친구인 지미(숀 펜)와 션(케빈 베이컨), 데이브(팀 로빈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친구들과 함께 놀던 데이브는 형사를 가장한 남자들에게 유괴된다. 며칠간 감금된 채 성폭행을 당하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지만 과거의 천진함을 되찾지 못한다. 지미와 션 역시 친구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후 셋은 점점 멀어진다. 그뒤 25년. 중년이 된 이들은 19살 난 지미의 딸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낯선 이방인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가장 아끼던 딸을 잃은 뒤 울부짖는 지미, 친구 하나없이 좀비처럼 일에만 전념하는 션,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모두 짊어진 듯한 데이브. 이들의 슬픈 인연은 숀 펜과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의 강렬한 연기로 체화되고 있다.

주연배우 일급 라인업이 있기까지

이스트우드가 <미스틱 리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신문 뒷면에서 책의 줄거리를 우연히 본 뒤다. “우선 타이틀이 맘에 들었고 아동학대를 단순히 범죄로 다루지 않고 이로 인한 비극적인 인과관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끌렸죠.” 원작자 데니스 르헤인은 할리우드가 걸작소설들을 삼류 액션영화로 전락시키는 게 불만이어서 아예 자기 소설을 영화화하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에이전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당신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해주자 두말없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고 한다. 이스트우드의 전작 <블러드 워크>의 시나리오를 썼던 브라이언 헬겔런드가 각색을 맡아 2주 만에 초고가 완성됐고, 이스트우드와 르헤인의 추가 아이디어를 반영해 완성된 각본은 숀 펜에게 처음 보내졌다. 이스트우드는 “숀이 각본을 본 직후 좋다는 답을 해왔다. 얼마 뒤 팀도 승낙을 했고, 이런 말이 퍼지자 많은 배우들이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서 “할리우드에서 진짜 머리카락을 가진 마지막 3명이 캐스팅된 영화”라며 너스레를 떨던 베이컨은 가장 오랫동안 로비활동(?)을 벌여온 노력파. 3년 전 프랑스 도빌필름페스티벌에서 <할로우 맨>을 홍보하던 그는 이스트우드의 방문 소식을 듣고 시사회 도중 몰래 빠져나와 그가 식사하고 있는 레스토랑까지 45분이나 되는 거리를 쫓아갔던 것. “클린트를 만나서 ‘참 존경한다. 다음 작품에 꼭 함께 작업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얼굴도장을 단단히 찍었죠.” 덕분에 세 번째 메인 캐릭터 션 역을 맡을 수 있었다.

지미의 아내 애나베스(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중 레이디 맥베스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역으로는 이스트우드와 <앱솔루트 파워>를 함께한 로라 리니가 출연해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도 마다않는 잔인하기까지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데이브의 아내이자 애나베스의 사촌 셀레스트 역에는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호흡을 맞췄던 마샤 게이 하든이 출연,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의 미심쩍은 행동으로 그를 의심하게 되는 나약한 여인을 연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스틱 리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신문 뒷면에서 책의 줄거리를 본 뒤다. “우선 타이틀이 맘에 들었고 아동학대를 단순히 범죄로 다루지 않고 이로 인한 비극적인 인과관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끌렸죠”

‘큰 형’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매사추세츠주 강력계 형사가 된 션의 파트너 화이티 파워스 역으로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로렌스 피시번이 나온다. 션과 화이티는 살해된 지미 딸의 사건을 맡게 된다. ‘화이티’라는 이름은 본래 보스턴의 갱스터 제임스 ‘화이티’ 벌거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이 영화 속에서는 숀 펜의 역할에 더 가깝다. 이번 작품에선 흑인인 피시번이 ‘화이티’(백인이라는 뜻의 속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맡아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캐스트 중 숀 펜과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 로렌스 피시번은 모두 감독 경험이 있는 배우. 이스트우드는 배우에게 지시를 하기보다 그들 나름대로 해석한 캐릭터를 보기 원한다. 따라서 숀 펜을 선두로 모든 캐스트가 짬날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스크립 리딩을 하고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토론을 가졌다고 한다. “클린트에 대한 믿음이 컸다”는 숀 펜은 “이 작품에서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암울하고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하지만 클린트에 대한 믿음 때문에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며 “그는 야단만 치는 아버지가 아니라 잘못도 감싸주고 때로는 함께 모험도 불사하는 큰형 같다. 그래서 더 노력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장면당 두번 이상의 테이크를 가지 않는 이스트우드도 이렇게 편안하게 촬영이 진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팀 로빈스는 “보통 영화들이 하루 평균 14∼15시간 촬영하는 반면 클린트와는 6∼7시간이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미스틱 리버>의 촬영일수는 39일이었다.

마샤 게이 하든은 “클린트는 ‘액션’이나 ‘컷’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래, 당신이 준비되면 갑시다’ (Okay, Whenever you’re ready), 그리고 끝낼 때는 ‘좋았어요’ (That was good)란 말로 대신한다”며 촬영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스트우드는 아무리 숙련된 배우라도 ‘액션’이라는 말을 들으면 긴장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배우에게는 아드레날린 러시를 주기 때문에 때로는 좋지만 늘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특히 <미스틱 리버>와 같은 영화는 배우들이 감정을 자신의 시간에 따라서 쌓아야지 감독 말에 따라 끌려가면 안 된다는 것이 노장감독의 지론이다.

애나베스 역을 “어미 사자처럼 보호본능과 자긍심이 강한 여자”라고 해석하는 로라 리니는 촬영기간 중 로맨틱코미디 <러브 액추얼리>를 런던에서 함께 찍고 있었다. “직업이 배우이니만큼 두 가지 상반된 작품에 출연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지만, 보스턴과 런던을 오가는 여행이 힘들긴 했어요. 그래도 존경하는 선배, 동료 배우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즐거운 나날이었죠.”

▲가장 아끼던 딸을 잃은 뒤 울부짖는 지미, 친구 하나없이 좀비처럼 일에만 전념하는 션,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모두 짊어진 듯한 데이브. 이들의 슬픈 인연은 숀 펜과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의 강렬한 연기로 체화되고 있다.

반전, 반 부시

이번 <미스틱 리버> 시사회 기자회견에는 전형적인 미국 영웅상을 대표해온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작품에 반부시 정부와 반전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숀 펜, 팀 로빈스, 마샤 게이 하든 등이 출연한 데 관심이 집중됐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라크를 방문했던 숀 펜은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고위 정부 관계자와 의원들을 많이 만나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팀 로빈스는 단독 인터뷰에서 “나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주먹대장(bully)들을 너무 싫어한다”며 “반전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등 지금 미국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선동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라고 말했다. “국민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정치인들이 감히 어떻게 우리를 배신할 수 있냐”는 마샤 게이 하든은 “앞으로도 정치적인 주관을 굽히지 않을 것이며, 현대사회를 반영할 수 있는 작품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41회 뉴욕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소개된 <미스틱 리버>는 지난 10월8일 미국에서 개봉된 뒤 11월10일 현재까지 41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숀 펜은 뉴욕영화제에 폐막작으로 초청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미국 내 정상급 평론가들은 벌써부터 이 두 작품으로 숀 펜의 아카데미 더블 노미네이션을 예상하고 있다.뉴욕=양지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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