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타란티노의 회심의 복수극,<킬 빌: volume1>
2003-11-18
글 : 박은영
■ Story

암살단의 일원인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나, 결혼식날 보스인 킬과 동료들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4년 뒤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버니타 그린(비비카 A. 폭스)과 야쿠자 보스가 돼 있는 오렌 이시(루시 리우)를 찾아가 복수를 감행한다.

■ Review

“복수는 차가울 때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고 했던가. 브라이드가 염두에 뒀을 이 격언은, 실상 타란티노의 것이기도 하다. <킬 빌>은 <재키 브라운> 이후 6년, 더 거슬러올라가 <펄프픽션> 이후 10년 넘도록 그가 가슴에 품어온 프로젝트다. 소문대로다. 타란티노는 <킬 빌>에 이르러 자신이 보고 열광한 영화들을 재료 삼아 ‘영화광으로서의 영화 만들기’의 꿈을 이뤄냈다.

알려진 대로 <킬 빌>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나마도 2편으로 나눠 소개되면서, 복수의 여정은 절반만 소개되고 있다. <재키 브라운>의 영리하고 정교한 플롯에 견주면, 너무나 단순하고 황당무계한 이야기. 그러나 애초 <킬 빌>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스타일이었다. 타란티노는 브라이드가 복수의 대상을 찾아갈 때마다 장르마저 바꿔내길 원했고, 특히 아시아 액션영화의 아카이브를 자신의 놀이마당으로 만들 참이었다. 홍콩 쇼브러더스의 로고를 띄우는 장난스런 오프닝부터, 장철의 사지절단 무술과 사무라이영화의 피분수가 뒤섞인 폭력 연출, 망가와 재패니메이션의 영향이 묻어나는 캐릭터 연출,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주인공의 전투복으로 설정한 의상까지, 타란티노는 “큐레이터로서의 천재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킬 빌>에 대한 반응은 엇갈릴 것이다. 타란티노와 얼마만큼 영화적 취향을 공유하는지, 또한 남의 영화(판타지)를 재활용하는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그 척도일 것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영화광 소년’ 타란티노의 순수한 열정이 보는 이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죄스런 쾌락이든 황홀한 혐오든.

<킬 빌>은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는 피바다에 다름 아닌 청엽옥 전투신에 일부 흑백 처리를 가한 할리우드 버전으로 소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등급위원회는 심의에서 잔인함을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고, 수입사에서 일부 장면을 삭제한 뒤에야 ‘18세 관람가’ 등급을 내줬다. 따라서 개봉관에서는 배가 갈리고 창자가 튀어나오는 장면과 목이 잘린 뒤 피가 솟구치는 장면 중 12초에 달하는 프레임이 사라진 채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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