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역을 맡는 것이 아니라 배역이 나를 맡는 것입니다."
<초록물고기>, <NO.3>, <조용한 가족>, <쉬리>,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YMCA 야구단>, <살인의 추억>. 순순하게 관객의 입장에서 송강호 만큼 믿음직한 배우가 있을까. <NO.3>의 조폭 두목이 그랬고, <반칙왕>의 레슬링하는 셀러리맨이 그랬다. <공동경비구역…>의 오경필 중사와 <살인의 추억>의 박형사도 마찬가지였듯이 그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벌써부터 <효자동…>의 이발사 성한모가 기대될 수 밖에 없다.
지난 17일 촬영장에서 만난 그가 신작 <효자동…>를 설명하는 단어는 '뜬금없다'는 것. "보통 작품들은 1년쯤 전부터 얘기가 오가거든요. <살인의 추억>이 끝나고 올해 말까지 쉬려고 했는데 놀랄만한 시나리오가 '뜬금없이' 예정에도 없던 타이밍에 저한테 온 것이죠."
그와 인터뷰는 `가슴 시리는 감동을 스케일로 따지면 블록버스터급'이라는 너스레로 시작됐다.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아버지 모두의 얘기'라는 점이 와닿아 출연하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였다는 게 출연 배경이다. 이어 흥분한 듯 더듬는 특유의 말투가 뒤따랐다.
"아들이 어디 갔는데 못 돌아온다고 쳐봐요. 이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는 멀쩡한 부모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시대의 황당무계한 현실이 들어 있어요. 어떤 사실주의보다 더 치열하게 사실적이에요."
송강호는 영화속 이발사 연기를 위해 실제로 머리 자르는 법을 배웠다. 양 팔의 수평을 맞춰가며 좌우를 재는 모습은 여느 이발사와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남자 머리 정도는 깎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게다가 머리에는 아줌마 파마를 했으며 얼굴을 부쩍 야윈 모습이다.
"젊게 보이기 위해 고수머리를 해봤더니 감독님이 만족해 하더군요. 섬세하고 날카로운 '한모'의 이미지에도 잘 맞고요. 몸무게도 같은 목적으로 운동하고 밥도 적게 먹으며 <살인의…> 이전 정도로 10㎏ 정도를 뺐습니다. (살이) 찌는 것은 쉬운데 빼는 것은 쉽지 않던데요."
그가 출연하는 작품 대부분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송강호는 자신의 연기 특징을 `배역을 끌어들이는 연기'라고 표현했다.
"최민식이나 설경구, 한석규 등의 배우들은 새 영화에 출연하면 그 사람이 턱턱 되더군요. 저는 그런 면에서 클래식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배역을 내게로 끌어당기는 편이죠. 그래서 영화 속의 인물들이 제 모습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송광호는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출연하기 이전에는 연극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동승>, <국물 있사옵니다>, <지젤>, <스타가 될 거야>, <비언소> 등이 그가 출연한 연극.
연극 출연 계획에 대해 묻자 "한동안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연극도 하고 싶죠. 하지만 연극을 하면 하루 종일 연습과 공연에 시간을 바쳐야 하잖아요. 영화와 연극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그래도 조만간 류승범이 출연하는 <비언소>를 보러 대학로를 찾을 생각입니다."
그는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동명 영화에 출연이 결정돼 있는 상황이다. 멜로영화에 출연할 계획은 없는지를 물었다. "많지는 않지만 멜로영화의 시나리오도 간혹 들어와요. 멜로라는 게 젊은 사람들의 달콤함만은 아니잖아요. 삶의 깊이가 진하게 묻어나올 수 있는 사랑 얘기를 만나면 출연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완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