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濁流)의 시대를 사실감 있는 액션으로 그리겠다"
<서편제>, <취화선>의 거장 임권택(67) 감독이 2년만에 '액션영화'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흔아홉 번째 영화 <하류인생>(제작 태흥영화사, 투자ㆍ배급 시네마서비스)이 그것이다. 19일 오후 영화 촬영이 진행중인 경기도 부천의 판타스틱 스튜디오에서 만난 임 감독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제하면서 "영화제에서 평가도 받으며 흥행에서도 성공을 시키겠다는 야망을 품고 <하류인생>을 찍고 있다"고 밝혔다.
<하류인생>은 1960~70년대를 무대로 하는 건달 이야기. 주인공 '태웅'은 '책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후 '소질'을 인정받아 건달의 길로 들어선다. 소용돌이치는 현대사에서 온 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이 남자의 인생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 이태원 사장과 정일성 촬영감독이 임 감독과 다시 의기투합했으며 '록의 대부' 신중현이 영화 음악으로 가세한다. 남녀 주인공은 <클래식>의 조승우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민선.
임 감독은 영화에 대해 "순수하고 착한 심성의 주인공이 탁류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황폐화하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라며 "싸움판의 사실감을 영화에 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영화촬영은 현재 30% 가량 진행중이며 내년 2월 말까지 크랭크업한 뒤 4~5월께 개봉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 일답.
액션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사실 주기적으로 액션물을 다루고 있다. 초기에 액션영화를 만든 경험으로 내게는 액션물에 대한 매력이 체질화하고 있는 것 같다. 보통 영화 속 액션은 중국 무술처럼 기예화(技藝化)해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어떻게든 싸움판의 사실감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한다.
<장군의 아들> 등 이전의 액션물과 다른 점은?
▲<하류 인생>을 액션만으로 '팔아먹을' 생각은 없다. 폭력으로 살았던 인물이지만 멜로요소도 있고 사회성도 강하게 들어가 있다. 순수하고 착한 심성의 주인공은 자유당 부정선거나 민주당의 무능함, 5.16 군사정권 등 시류가 바뀌는 과정에서 별 생각없이 살아가지만 집권자가 지향하는 사태에 휘말려들 수 밖에 없다. 그 시대는 탁류의 시대였으니까. 큰 사건보다는 일상의 재미를 강력한 힘으로 찍어내고 싶다.
주인공 캐릭터의 모델이 된 인물은 있나?
▲그 시대는 나를 비롯해 이태원 사장이나 정일성 촬영감독, 신중현씨 등이 살아왔던 시대다. 이 영화는 <장군의 아들>처럼 어느 한 사람의 얘기만은 아니다. 각각이 살면서 겪었던 것들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취합해 조립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춘향전>에 이어 조승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이유는?
▲<춘향전> 때 조승우의 이력서 사진을 보고 '무슨 배짱으로 그따위 사진을 냈는지'하는 생각이 들더라. 전신 사진도 아니고 그냥 대강 찍어 보낸 사진이었는데 그때 언젠가는 건달영화를 꼭 시켜봤으면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언뜻 보면 건달 같은 인상은 없겠지만 영화가 완성된 후에는 모두 깜짝 놀랄정도로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김민선을 여주인공으로 출연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인형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개성이 있고 매력도 대단한 배우다. 엄청나게 노력하는 친구이며 순발력도 좋고 영리한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의 역에 딱 맞는 연기를 해내고 있다.
영화에 멜로 요소는 어느 정도 들어가는가.
▲사실 나는 멜로를 잘 하는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도 멜로 요소를 갖고 있고 그래야 또 흥행이 잘 된다. 물론 우여곡절과 눈물의 사연이 있는 식은 아니다.
신중현이 음악감독을 맡게 된 계기는?
▲전작들은 거의 국악 중심으로 음악을 썼으며 그 힘으로 영화를 밀어붙였고 서편제 때는 우리 소리가 감동스러움을 젊은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근대가 배경이니 시대에 맞는 음악을 쓰고 싶었고 이 부분에서 도움을 줄 만한 분은 음악가 신중현씨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에는 작곡을 안해왔지만 그에게는 세월이 쌓여 있다. 쌓인 세월에는 작가에게 대단한 음악적 진원지로 작용한다. 그분의 음악성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고 따라서 '록'음악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발표한 노래도 영화에 들어가고 새로 만든 노래도 포함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60년대를 돌아보면?
▲나도 '하류인생'을 살고 있었다. 영화도 허접한 영화들을 찍었고. 61년 처음 촬영을 시작했고 60년대 초반 연출을 시작했다. 어느새 40년이 지났다.
<하류인생>을 칸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은 있나.
▲벌써부터 칸에서 관심을 보내오고는 있다.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몰라도 영화제에서 평가도 받고 흥행에서도 성공시킬 수 있는 그런 야망을 품고 있다. 물론 영화의 '꼴'이 잘 되어야지. 아니면 쳐다나 보겠나.
100번째 영화에 대한 계획은?
▲초기 50여편의 영화를 '흐트렁 망트렁' 만들었다. 때문에 100번째라고 해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98편의 전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기술시사회나 기자시사회 말고는 내 영화를 될 수 있으면 안보려고 한다. (속이) 끓어서 못보겠다. '왜 그렇게 찍혔나. 더 잘 할 수도 있었는데'라는 식의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는 딱 끝나면 바로 잊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