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ULTRA COOL-SEXY,<킬 빌>의 우마 서먼
2003-11-26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인간의 성공과 실패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21세기 가까운 미래,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의 가장 우수한 인력으로 손꼽히던 아이린은 우마 서먼이 지닌 매력의 모듬회 같은 캐릭터였다. 늘씬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 우주과학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냉철함, 그리고 완벽한 우성인자를 갖춘 금발 미녀. <개와 고양이의 진실>에 등장하는 섹시하지만 멍청한 노엘을 맡을 때까지도 그녀는 극 안에서 이방인처럼 서성이는 조연에 머물렀다. 예쁘지만 물기없는 그녀의 몸과 얼굴 표정은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을 내비쳐야 하는 20세기 여주인공 역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아무리 빠져 있어도 내 안의 한 부분은 늘 차갑게 식어 있다”고 고백하는 우마의 서늘한(언뜻 보면 차가운) 캐릭터는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각광받기 시작한다.

코끝이 약간 휘고 입가가 살짝 말려올라가는 정도의 옅은 미소, 꼿꼿한 등과 살짝 내리깔린 눈동자, 고양이처럼 길고 가는 몸매는 이상하리 만치 멜로물과 부조화를 이뤘다. 그렇다고 그녀가 얌전한 코스튬드라마 <러브 템테이션>이나 <레미제라블>의 팡틴 역에 녹아든 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혹자들이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배트맨 앤 로빈>의 포이즌 아이비 역을 탐낸 건 오히려 그녀쪽이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에게 끌렸다. 사람들은 내 몸매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하지만. 특별한 의상과 특별한 대사가 있고, 감독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 숨쉬는 영화라면 욕심이 마구 생겨난다.” 그래서일까. <펄프 픽션>에서 우아한 미아를 연기하는 서먼은 무표정 속에 번뜩이는 광기를 천재적으로 표현한다.

그로부터 10년, 다시 타란티노 감독과 결합한 서먼은 피로 얼룩진 과거를 떠올리며 복수를 다짐하는 브라이드로 거듭난다. 처음 그녀는 타란티노로부터 ‘암살단원의 일원’이라고만 전해들었을 뿐 일본도를 들고 사지절단 액션을 해낼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녀를 비롯한 출연배우들은 세달 동안 꼬박 일주일에 5일씩, 그것도 하루 8시간 동안 원화평의 지도 아래 엄격한 훈련을 거쳐야 했다. 액션 트레이닝 과정을 끝마쳤을 땐 땀과 눈물로(그리고 피로, 온통 피투성이었다) 범벅이 되곤 했다. 감독과 마음이 맞았던 것도 아니다. 특히 첫 번째 리스트에 오른 비비카와 대결신에서 서먼은 “꼭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죽여야겠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감독이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내가 이 인물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적어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눈을 팔진 않을 만큼의 매력은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 브라이드는 극중에서 아이를 잃지만, 현실에서 서먼은 남편 에단 호크와 이별했다. 타란티노와 서먼의 염문설에 맘이 흔들린 호크가 열살 연하의 모델과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타블로이드 신문은 떠들어댔다.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수선을 떨지도 않고, 덤덤히 작품에 임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자신을 억제하는 가운데서도 솟아나는 깊은 분노의 몸짓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가운데서도 더욱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을.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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