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제게서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풍기나요? <올드보이>의 배우 윤진서
2003-12-03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이수아. 그녀를 알고 있다, 고 하면 다친다. <올드보이>에서 수아는 이우진(유지태)의 누나로, 우진이 오대수(최민식)를 먹잇감으로 찍게 된 연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아예 그녀의 존재를 숨겼다. 동시에 윤진서(21) 또한 묻혔다. 이름 붙은 어엿한 배역을 받아 스크린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싶었을 텐데 상황이 이러하니 어디 떠들고 다닐 수 있었을까. 속상한 것 없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 안 불려다니니까 몸이 편해서 좋은데요, 뭘” 이라 한다.

윤진서가 ‘올드보이’와 어울린 건 김지운 감독 덕이 크다. 그녀는 <장화, 홍련> 오디션에 응한 적이 있다. 근데 떨어졌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하고 넘길 무렵, 김지운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에 어울릴지도 모른다면서 소개해준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을 좋아하면서도 한켠에 품었던 “얼마나 감독이 잔인하기에 그런 영화를 만들었나” 하는 호기심을 동력삼아 오디션에 응했다. 내심 노렸던 역할은 미도. “근데 감독님이 수아가 제게 더 잘 어울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강)혜정 선배 하는 걸 봤는데, 안 하길 잘했어요. 겁도 없이 덤볐으면 욕먹었을 텐데….”

촬영 도중 그녀는 실제 높은 댐에 매달려서 바둥거리는 등의 고역도 치러야 했다.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웬만한 담력 아니면 못할 일. “당연히 무섭죠. 근데 10분 정도 있으니까 괜찮더라고요. 외려 목을 들고 있어서 근육이 당기는 게 더 힘들던데요.” 노출장면 또한 만만치는 않았을 텐데,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과학실 장면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며 어색함 없이 끝냈다고 술술 말한다. 한술 더 떠 상대배우에게 “지금까지 (그런) 경험한 거 빨리 다 말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녀는 서울예대 연극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 둘과 떨어지기 싫어 인원제한이 없는 연극부에 들게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왔다. “학교 가기 싫은 날이면 극장에서 살았다”는 그녀가 카메라 앞에 처음 선 영화는 <버스, 정류장>. 김태우를 따라다니는 여고생 3인방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신인배우들이 흔히 털어놓는 카메라 공포증은 없었다고. “연극할 때 과장된 연기가 너무 싫었거든요. 잘 못했고. 그런데 카메라는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걸 원하니까 편하더라고요.”

윤진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이자벨 위페르. <피아니스트>를 보고 홀딱 빠졌다.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겨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가 즐겨보는 영화 장르는 스릴러. 팜므파탈 역은 언젠가 입어보고 싶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여담 하나. <올드보이>에서 애초 수아는 우진처럼 심장이 약한 소녀였다. 그에 비해 그녀는 대학에서 연 단축마라톤에서 수상권에 들었을 정도로 심폐 기능이 좋다. 인터뷰가 있던 날 허진호 감독의 이공 프로젝트 <따로 또 같이> 촬영 때문에 밤을 꼴딱 새웠는데도 또랑또랑한 걸 보니 허언은 아니다. “혼자서 여행하는 걸 좋아하며, 영화도 내 여행 중 일부”라니 그녀의 지구력에 기대를 걸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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