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모성만이 잉태할 수 있는 여인의 초상,<미스틱 리버>의 로라 리니
2003-12-10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로라 리니(39)가 할리우드 스타였던 적이 있던가? 이렇게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것이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반짝거리는 금발머리와 투명하게 하얀 피부, 흐트러짐 없이 또렷한 이목구비, 10대 영화의 스타로 연기경력을 시작했을 법한 외모지만 그녀는 아주 늦게 할리우드에 도착했고 아주 천천히 관객의 뇌리에 새겨졌다. 온갖 잡지가 앞다퉈 표지사진을 찍은 적도 없고 이혼한 적은 있지만 대단한 스캔들이 난 적도 없는 배우, 로라 리니는 ‘스타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스타’이다.

느리게,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게 움직이는 그녀의 행동패턴은 지금 극장에 걸린 두편의 영화, <러브 액츄얼리>와 <미스틱 리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로라 리니는 2년 넘게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를 짝사랑하는 여자 사라로 나온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남자의 품에 안기는 순간 사라를 찾는 전화가 온다. 정신이상으로 한시도 그녀 없이 버틸 수 없는 오빠, 그녀는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포기하고 숨죽여 울면서도 오빠의 어깨를 다독이러 달려간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이야기인 사라의 에피소드는 <러브 액츄얼리>가 솜사탕처럼 가벼운 영화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 감독 리처드 커티스도 이 점에 유의했을 것이다. 사라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다른 에피소드들의 해피엔딩도 감동을 줄 수 없었으리라. <유 캔 카운트 온 미>에서 남동생에 대한 염려로 눈물 흘리던 새미를 기억한다면 리처드 커티스의 선택은 쉽게 납득이 간다. 그는 직접 편지를 써서 대서양 건너편에서 활동하는 로라 리니의 출연을 부탁했다.

<미스틱 리버>에서도 로라 리니는 화면에 등장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존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여인 아나베스로 나온다. 남편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녀가 보이는 반응은 두려움이나 당황이 아니다. “당신은 우리 가족을 지키고자 했다”며 수컷의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그녀의 모습에는 선악의 기준을 허물어트리는 독기가 서려 있다. <유 캔 카운트 온 미>와 <러브 액츄얼리>의 불행한 여인이 실은 얼마나 강한 여자인지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확실히 로라 리니는 온실에서 자란 금발미녀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슬픈 사연을 간직한 듯한 그녀의 얼굴은 웃으면 환하지만 다물면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턱선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엔 작고 여리지만 아무리 부딪혀도 쓰러지지 않는 여인의 힘이 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일찍 세상에 내던져졌던 우리 누이들 같은 표정, 그건 뒤돌아 눈물을 삼키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질긴 모성만이 잉태할 수 있는 여인의 초상이다.

짐작하겠지만 로라 리니는 늦게 발견된 배우다. 아버지가 극작가인 탓에 일찍 연극 무대를 접했지만 어렸을 적 그녀는 읽고 쓰는 데 소질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1986년 대학을 졸업한 뒤 줄리아드 연극학부에 입학했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당시 로라 리니의 입학 오디션을 봤던 해롤드 스톤(줄리아드 연극학부 학장)은 “30초간의 연기에 심사위원단이 뒤로 넘어갔다”며 천부적 재능을 칭찬했지만 정작 학교 수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뉴욕타임스>에서 해롤드 스톤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연습했다. 우리는 그녀의 재능을 믿었지만 때로 그녀가 지나치게 텍스트에 충실한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는 각본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연습을 필요로 했다. 그렇긴 해도 일단 자기 것으로 만들고나면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순 없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던 초창기에도 그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 첫 작품 <시걸>의 경우 로라 리니가 친구들에게 제발 보러오지 말라고 부탁했을 정도였고 <바냐 아저씨>도 악평을 받았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벤 브랜틀리라는 평론가는 로라 리니가 “거의 모든 대사를 체육교사가 고함치듯 연기했다”고 쓰기도 했다. 실망했지만 로라 리니는 멈추지 않았다. “난 단지 계속 일하고 싶었다. 훌륭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계속 배우려고 했다. 그것이 상업적으로는 전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의 말대로다. 일을 사랑한다면 성공보다 연기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망치고 말 것이다.”

나이 서른이 넘어 출연한 할리우드영화 <콩고> <프라이멀 피어> <트루먼 쇼> 등으로 사람들의 눈에 익숙해진 로라 리니는 1997년 <앱솔루트 파워>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만났고 2000년 <유 캔 카운트 온 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해 연극 <크루서블>로 토니상 후보가 됐다. 정말 늦게 붙은 불꽃이 더 맹렬히 타오르는 것일까? 아무튼 지금은 시련과 고난에 저당잡힌 그녀의 20대가 화려한 복수극을 펼쳐 보이는 시기이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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