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남루한 것이다. 21살 때 극단에 들어가 이십대를 고스란히 연극에 바친 오달수는 삶이 남루하다는 걸 배웠다. 물걸레질을 해서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더 바랄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는 청년은 최고의 연기 스승이란 자신의 삶이란 것도 알았다.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연기와 삶은 다른 것이 아님을.
중학교 시절, 첫눈이 내릴 것처럼 꾸물대는 날씨에 좀이 쑤신지 하품을 딱딱 해댈 때였다. 과학 선생님이 던진 질문 하나 “해녀가 추운 겨울에 어떻게 바다에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밀도에 의한 온도 차이를 묻는 것일까. 아이들의 머리 속에선 겨우 “육지보다 바다가 더 따뜻하니까”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선생님의 대답은 이거였다. “어제도 들어갔으니까 오늘도 들어갈 수 있다.” 섬세한 성격은 아닌데, 왠지 오달수는 이 질문과 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묘한 감동. 아무리 차가워도 어제 들어간 물이므로 오늘도 들어갈 수 있다. 괜히 멋있게 느껴지는 그 말을 가슴에 깊이 묻었다. 그리고 이십년이 흘렀다. 그를 연극 무대로 처음 안내한 건 참여시인이자 아는 형이었다. 89년, 시대는 엄혹했으며 문학계는 침묵 속에 얼어붙었지만, 다행히 연극계는 죽지 않고 가는 숨으로 파닥이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보다야 무대에서 내지르는 게 좀 더 자유롭지 않겠냐고, 소개한 형은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극단 생활, 입단한 지 3개월 만에 첫 배역이 주어졌다. <오구>의 단역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시작된 쉼없는 연기 인생이 오늘에 이르자 이번엔 그 형이 놀랐다. 잠깐 하다 그만둘 줄 알았다고. 여지껏 무대에 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오달수에게 후회는 유혹이다. 후회는 무서운 유혹. 후회하면 반드시 그만두게 된다. 그만두지 않으려면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그래서 오달수 인생에 후회란 없다. 부산서 가마골을 지키며 극단 생활을 하던 오달수는 97년 서울에 올라와 <남자 충동>이란 극으로 프리랜서를 선언한다.
그러다 3년 전에 극단 <신기루 만화경>을 창단하면서 대표 직함을 얻었다. 더는 돌아보지 않도록 스스로 발을 깊게 박은 것이다. 아니, 마음을 박아넣은 것이다. 이제 극단의 무대에는 열세 번째 극을 올렸고, 네 번째 장편영화에 출연 중이다.
<올드보이>의 ‘철웅’과의 인연은, 조감독 구자홍이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 단역으로 출연한 오달수를 눈여겨보고 <여섯개의 시선> 박찬욱 감독편에 그를 천거하면서 이뤄졌다. 워낙에 디테일한 콘티 덕분에 지시한 대로 연기했을 뿐이라지만, 극 속에서 오달수는 극사실주의 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일로 인연을 맺은 구자홍과는 그의 감독 입봉작인 <마지막 늑대>로 다시 만나게 됐다. <효자동 이발사>에서는 주인공의 비밀을 움켜쥔 문제인물로 등장한다. <올드보이>를 통해 현장에서의 앙상블이 뭔지 경험했다는 오달수는 “절대반지 앞에서도 굴하지 않을 영화”라고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