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사건은 지금도 진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제의 사건이다. 68년 4월 ‘김일성의 목을 따 오라’는 중앙정보부의 비밀 지령에 따라 특수부대가 창설되고, 실미도라는 외딴 섬에서 지옥훈련을 받고, 그 사이 정세가 바뀌어 평화통일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이 부대는 실미도에 방치되기 시작했고, 식량 공급도 충분히 안 되는 비인간적 상황이 지속되자 71년 8월 부대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기간병들을 죽이고 서울로 들어왔다가 모두 숨진 사건이다. 그러나 부대원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이 부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뭔지, 정부는 이 부대를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건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 온전한 법치국가라면 상상키 힘든, 광기어린 공작이 빚어낸 비극.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정말 영화 같은 사건이지만, 그게 현실에서 벌어졌을 때 상상력은 단절된다. 살인병기가 돼야 하는 극한 상황의 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그런 감정이입이 가능한 건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정보조차 없다.(지금까지 진상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건, 사람들이 그걸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건을 다룰 때 영화는 종종 사건 가까이에 있었던 생존자의 소회를 빌려와 상상력의 단절을 이을 다리로 삼거나, 아니면 그 사건을 만든 권력층을 파고 들어간다.(권력이 빚은 학살극은 피해자쪽에서는 인과관계가 이어지지 않는다. 가해자, 즉 권력쪽에서는 그래도 낫다.) 실미도 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는 두 방법 다 마다하고서 곧바로 피해자, 즉 부대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정공법처럼 보이지만, 이건 힘들고 위험한 길이다. 정작 우리에게 낯선 건 부대원들을 사지로 내몬 권력이 아니라, 그 사지에서 죽어간 부대원들이기 때문이다. 실미도는 이런 점을 무시하고 부대원들과 관객이 쉽게 교감하기를 의도한다. 살인미수로 사형을 선고받은 조폭 강인찬(설경구)을 앞에 내세우고, 그 주변에 단순무식한 의리파 상필(정재영), 좌충우돌형 원희(임원희) 등 전과자들을 배치한다. 김일성의 목을 따 오면 사면해 준다는 약속을 믿고 실미도에 온 이들이 처음엔 싸우고 갈등하다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서로 정을 쌓아간다. 낯설지도 않고, 특별히 미워할 이도 없는 이 부대원들을 국가가 배신한다.
<실미도>에서 낯선 존재는 권력이다. 영화는 국가권력을, 공작을 일삼고 개인을 도구로 희생시키는 존재로 박제화해버린다. 이 영화가 중계하는 실미도 사건은 거친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아니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의 재해석보다는 인물과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인물이나 드라마를 과감하게 만들어가지도 않는다. 강우석 감독의 전작 <공공의 적>에서처럼 찰진 대사와 생동감있는 캐릭터가 이 영화엔 없다. 나름의 긴장을 끌고 가는 건 상당부분 이게 실화라는 점이 전제돼 있기 때문인 듯하다. <실미도>는 실제 사건의 재해석도, 영화적 가공의 재미도 모두 미진해 보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의 극적인 요소를 따 와 관객들에게 익숙한 양념을 더하자는 전략을 가지고 거기에 충실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순제작비 82억원이라는 규모까지 더해, 여러모로 흥행결과가 궁금해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