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연극과 영화를 넘나드는,<실미도>의 배우 강신일
2003-12-24
글 : 박혜명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연극의 카타르시스를 영화에서도 얻었다”

배우 강신일이 <이재수의 난>으로 처음 영화현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낯설었던 건 카메라나 조명기구 따위가 아니었다. 스탭들은 세분화된 팀별로 나뉘어 제 일에만 열심이었고 이전부터 알아왔던 박광수란 사람은 “쉽게 범접치 못하는” 감독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 같이 모여 북적대고 한데 뒹구는 연극무대의 뒤와 전혀 다른 별세계였다. 그때까지 20년 가까이 연극만 해왔던 강신일의 눈에는 “스타배우와 무명배우, 영화 ‘유경험자’와 ‘무경험자’의 층”도 보였다. 오히려 카메라는 무섭지 않았다. 꼼꼼하고 테이크 많이 가기로 유명한 박광수 감독이 강신일의 테이크는 서너번에 끊었다. 살수기와 조명기기의 NG로 여덟번까지 반복한 게 최대다. 그곳은, 마흔번 넘게 테이크를 간 장면도 있을 만큼 지독한 현장이었다.

강신일은 연극무대에서 연기자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연극을 해오던 그는 80년에 몇몇 사람들과 극단 ‘증언’을 만들었다. 1년에 1∼2회씩 일반 극장에서 정기공연을, 수시로 병원, 학교, 군부대, 교도소, 시골교회, 나환자촌 등에서 순회공연을 돌았다. 연극을 더 하고 싶어서 86년 연우무대에 입단했고 그와 동시에 문성근과 함께 연극 <칠수와 만수>의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우무대를 떠나본 적이 없다. 무대에 올린 작품 수가 서른여개. 대학로 연극인 중에, 물론 그 이상 활동한 배우들에게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강신일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의 강신일은 자신이 굳이 연극계의 핏줄로 구분되길 원치 않는다. 연극인으로서 지난 1990년 김민기를 중심으로 연우무대인 몇몇과 소극장 ‘학전’을 만드는 데 “함몰돼” 있었던 4년, 그리고 <공공의 적> <광복절특사> <청풍명월> <천년호> 그리고 <실미도>까지 영화현장에 붙어 살았던 2년 반의 두번 공백기를 갖고 이제 다시 연극 <한씨 연대기>를 준비 중이지만, 강신일은 지금 자신이 영화를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카메라가 그립고 그 앞에 서고 싶어서”라고도 하고,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책임져야” 할 자신의 위치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 <실미도>를 하면서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얻었다는 것이다. 7개월을 함께했던 동료배우들에게 높이 쌓인 신뢰와 애정만큼 자신의 캐릭터에 깊이 파고들었던 그는 타고난 느린 말투로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담당교관을 제 손으로 쏘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 며칠 동안 먹먹했던 심정과 31명의 부대원 중 끝까지 살아남는 멤버가 아니므로 마지막 태화고속버스에 탈 수 없었던 ‘운명’을 전하면서. 묵직하고 진지한 그가 울컥 솟는 눈물을 애써 참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연극인의 출신성분이야 두고두고 숨길 수 없다 하더라도 영화계에 입양되어간 연기자 강신일의 삶이 제2장의 시작페이지를 이미 넘긴 것 같다는 사실의 근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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