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붉은 돼지> 허문영 영화평론가
2003-12-30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마지막 연대에 대한 그리움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는 괴이하게도 몸은 사람이고 얼굴은 돼지다. 더 이상한 건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두 멀쩡한 사람인데 누구도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마술이다.

애니메이션이니까 그렇지 뭐,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붉은 돼지>는 좀 다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애니메이션들이 대개 초국가적이거나 초역사적인 환상담인데 반해, <붉은 돼지>는 특정 시대의 특정 지역에서,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얽혀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1차 대전에 참여한 이탈리아 공군비행사 출신이며 1920년대 말 지중해 연안에서 공중해적을 소탕해 번 돈으로 먹고 사는 현상금 사냥꾼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왜 돼지일까. 그리고 왜 그 시대와 공간을 택했을까.

1920년대 말이라는 시간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2차대전의 시간과 그 이후의 역사를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어렸을 때, 난 일본이 싫었다. 전쟁을 통해 가족들이 돈을 벌었고, 전쟁을 통해 일본이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됐기 때문이다”고 했다. 2차대전은 참화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유태인 학살과 원자폭탄으로 모든 게임의 규칙이 파괴됐다는 사실 때문에 가장 끔찍한 사건이다. 명예율은 사라졌고, 이성은 폐기처분됐다.

현실이 이성을 살해하면 상상은 현실을 배반하기 시작한다. 상상은 현실을 포옹하지 않고 그를 자랑스럽게 혹은 강박적으로 지우려 한다. 그러나 그건 미야자키의 방식이 아니다. 위대한 상상가 미야자키의 모든 인물들에는 현실의 외로움과 쓰라림이 배어있다. 그조차도 직설법으로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연대가 1920년대였을 것이다. 그의 주인공은 그 연대마저 인간으로 살 수 없다. 애국채권 매입을 권유하는 가게 주인에게 포르코는 말한다. “애국 따윈 인간이나 많이 하쇼. 돼지에겐 국가도 법도 없소.”

그 연대가 끝났을 때, 포르코의 현실도 끝났다. 그 연대를 돼지로 살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떠나자 우리는 그 돼지가 유일한 인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만이 취향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의 옛 전우가 “이제 취미로 비행하던 시대는 지났어. 국가 같은 스폰서가 있어야 돼”라고 말하자 포르코는 귀찮다는 듯 내뱉는다. “나는 돈벌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그가 떠났을 때 무일푼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붉은 돼지>는 고전기 영화에 대한 미야자키의 헌사이기도 하다. 첫 장면에서 무인도 해변에 누워 포르코가 보고 있는 잡지는 <시네마> 1929년 7월호다. 포르코는 또 돼지가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고 투덜대며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황야에도 문명에도 속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육체로 세상을 버텨내는 할리우드 서부 사나이와 포르코는 생존방식과 명예율을 공유한다. <붉은 돼지>에서 말은 비행기로 바뀌며 무법자가 판치던 서부는 하늘로 확장되는 것이다.

실은 포르코를 보면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다. 1930년대 프랑스 해안도시에서 낚시배를 굴리며 사는 떠돌이 미국인(<가진 자와…>),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냉소주의자(<카사블랑카>)는 명백히 포르코의 영화적 형제다. 일찍이 보가트는 두 영화에서 “내겐 돈이 중요해. 당신의 정치적 신념은 존경하지만, 끼어들고 싶진 않아”라고 포르코처럼 말한 바 있다.

<붉은 돼지>는 아름답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들판과 거리와 집들이 아름다우며, 포르코를 떠나보내는 저녁 하늘이 아름답다. 무엇보다 움직이는 형상들의 그지없는 생동감으로 아름답다. 그곳에선 영웅이 돼지의 형상을 자처했으나 여전히 그를 영웅으로 또 남자로 사랑할 수 있었다. 차이를 외면하거나 없는 척하지 않고, 그 차이를 긍정하며 차이와 즐겁게 놀기. 그것이 왜 돼지인가에 대한 미야자키의 대답이다. <붉은 돼지>는 모든 위협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마지막 연대에 대한 그리움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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