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골룸을 했어도 좋았을 텐데, <반지의 제왕>의 엘리야 우드
2003-12-31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명확한 대조를 위해 약간 앞뒤를 자르고, 조금 감정을 가미한, 하지만 용건만은 진짜 오고간) 두 호빗의 대화. 샘(숀 애스틴)이 말하길, “피터 잭슨이 호빗의 귀여움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어. 하지만 피터는 호빗을 우스꽝스러운 기분전환거리로 본 것 같아”. 웃음을 띠고, 고개를 저으며 프로도(엘리야 우드)가 말하길, “나는 내가 호빗이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나는 매일매일 그런 자긍심으로 세트장을 걸어다닌 걸요”. 다시 샘이 말하길, “내 말은 그저 호빗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는 말일 뿐이야”. 다시 프로도가 말하길, “나는 언제나 우리가 그렇다고 느껴온 걸요”.

호빗을 표현하기에 적당할 만큼의 작은 키뿐만 아니라 절대반지의 유혹에도 맞설 수 있을 만한 “푸르고 순수한 눈”을 가진 덕택으로, 그 고생스러운 영광의 자리에 오른 엘리야 우드는 어느 면에서나 호빗이다. 네명의 호빗 중에 망토를 벗고, 고수머리를 곧게 펴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도시적인 멋을 내도 역시 호빗족의 골품을 지닌 배우는 엘리야 우드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프로도 이외에 하고 싶었던 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엘리야 우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골룸을 좋아해요. 항상 좋아해왔고요. 내가 골룸 역을 하고 싶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호빗>을 읽을 때부터 골룸을 좋아했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호빗, 즉 프로도와 골룸의 상관성을 그가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두개의 서사 공간으로 나뉜다. 모르도르의 불구덩이에 반지를 던져넣기 위해 산을 오르는 프로도의 ‘고행’과 또 한편에서 벌어지는 ‘장관’이 그 각각의 주인공이다. 사우론의 군대와 원정대 사이의 대결이 외적 전투라면, 모르도르를 앞에 두고 펼쳐지는 프로도와 골룸은 “심리적인 내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명쾌하게도 그 점에 대해 엘리야 우드는 “프로도가 반지를 받아들인다면 골룸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골룸은 프로도의 거울”이라고 정의한다. 영화 속에서 절대반지를 목에 걸고 산을 오르는 프로도는 언제나 골룸의 가능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피터 잭슨이 “영화의 심장”이라고 표현한 이 장면에서 엘리야 우드를 힘들게 했던 건 1편과 2편에서처럼 대자연을 헤매는 천신만고의 고생이 아니라 그 단순한 행위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갈등이었다. ‘진짜 호빗’ 엘리야 우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영화들보다는 쉬운 작업이었다”고, 21세기의 대서사시를, 그에 따르는 악전고투를 무심하게 일축하는 무지막지한 감독에 홀려 1999년 여름 뉴질랜드에 도착한 엘리야 우드.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호빗들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15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그는 집과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프로도의 이름으로 지낸 4년의 시간 동안 엘리야 우드는 18살의 소년에서 22살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7살에 데뷔하여 <백 투더 퓨처2> <유혹은 밤그림자처럼> <라디오 플레이어> 등에서 숱한 단역을 거쳐 세계의 호빗으로 등극한 엘리야 우드는 영웅도 아니고, 용사도 아니고, 성자도 아닌, 그러나 희박한 욕망을 지닌 한 ‘종’으로 중간계를 구해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프로도가 반지를 화염 속으로 던지는 순간, 말하자면 자신을 스타로 만들고, 특징화한 캐릭터가 끝나는 순간, 엘리야 우드는 프로도와 작별하고 다른 무언가의 캐릭터를 찾아야만 한다. 엘리야 우드가 피터 잭슨의 다음 영화 <킹콩>에서 킹콩 역할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다시 혼자 살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그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될 수 있는지, 혹은 숀 펜이 될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백조의 노래를 부르고는 사라져버린 수없이 많은 배우들 중 하나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순결한 마음의 영원한 빛>과 <양크>에서 그의 새로운 모습을 기다려보자.

엘리야 우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프로도의 모험이지만 영화 바깥 자신의 여행이기도 하다. 또한 “서사시”라고도 부른다. 환상의 서사시이지만, 자신의 육체로 써온 성장의 서사시이기도 하다. 절대반지를 포기하고 얻어낸 것은 ‘성장’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내 인생 자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아요. 내 인생의 표식이 되기를 바랄 뿐이죠. 그리고 아마 그렇게 될 거예요.”

사진제공 SY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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