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인터뷰] <말죽거리 잔혹사> 유하 감독
2004-01-09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이소룡 키드도 획일주의 한 풍경”

“압구정동에서 말죽거리까지 오는 데 십년 걸렸습니다.” 93년 자신이 발표했던 시집과 같은 제목의 영화 <바람부는 날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데뷔한 유하(41)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 시사회 상영 전 이렇게 인사말을 갈음했다. 감독의 십대시절 학교생활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영화에서 여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주인공 현수는 유하 감독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많이 투영된 작품 같다. 실제 학교 생활은 어땠나.

한마디로 지옥 같았다. 본래 배우사진을 모으거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 보내는 걸 좋아하는 여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학교라는 사회는 남자답기를 폭력적으로 강요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싸움질을 일삼는 문제학생이 되어갔다. 그때는 그게 멋있고 남자가 되는 건 줄만 알았다.

70년대가 배경인데, 체벌이 금지된 요즘 학교를 다닌 젊은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나.

그 모습은 변했어도 유일무이한 가치를 강요하는 건 요즘이나 옛날이나 변하지 않은 제도교육의 본질이다. 이를테면 대학입시 같은 것이다. 현수 역시 학교에서 난동을 부리고 거의 자발적으로 학교를 나오지만 결국 대학에 가기 위해 검정고시학원으로 간다. 그런 면에서 젊은 친구들 역시 제도교육이나 학교에 가지고 있는 불만은 우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 같은 건 없었는지.

시사회를 보면서 문득 지옥도 시효가 지나니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당시를 미화하거나 낭만적으로 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현수가 선도부 아이들과 싸우는 장면도 영웅적이기보다는 평범하던 아이가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현수도 그렇고 우식이나 재복이도 모두 불운한 출구를 향해 간다. 그 나이 때 상실해 가는 것들, 그리고 그를 통한 변화나 성장을 담으려고 했다.

영화에 이소룡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열혈팬인가.

사실 우리 세대에 이소룡의 열혈팬이라는 건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누구나 이소룡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취향이나 놀이에서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졌던 획일주의적 풍경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 영화에 등장시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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