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2의 도약기, 기대하시라! 좋은영화 대표 김미희
2004-01-14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모든 면에서 올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좋은영화의 김미희 대표는 인터뷰 도중 몇번씩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지난해 <선생 김봉두>를 개봉한 것 외엔 표면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던 좋은영화가 모아뒀던 힘을 올 한해 한꺼번에 뿜어낼 태세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장풍대작전>을 신호탄으로 김대승, 변영주, 장규성 감독의 신작을 포함,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 4∼5편이 속속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1998년 창립한 이후 가장 많고 다양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말고도 좋은영화에 큰 변화의 조짐이 있다면, 그동안 절대적이다시피 의존 및 협력관계를 맺어온 시네마서비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는 점이다. 일단은 영화제작 물량 증가에 따른 것이라 해도, 시네마서비스의 주요 제작사인 좋은영화가 다른 투자·배급사와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은 충무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에 더욱 주목을 끈다. 여러 개의 작품을 동시에 매만지느라, 투자자들을 만나느라 바삐 뛰고 있는 김미희 좋은영화 대표를 만났다.

-최근 무척 바쁘다고 들었다.

=지난해에는 <선생 김봉두> 한편만 개봉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1년 동안 준비했던 작품이 모두 올해 몰리게 됐다. 5월5일 개봉하는 <아라한-장풍대작전>을 시작으로 김대승 감독의 <혈의누>,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 장규성 감독의 <여선생 vs 여제자>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대형 액션물과 로맨틱코미디 하나까지 있다. 특히 <발레교습소>는 다른 쪽에서 투자를 받게 돼서 여러 군데를 뛰어다니고 있다.

-<발레교습소>는 어디에서 투자를 받나. 또 왜 그렇게 결정했나.

=아이픽처스에서 투자받게 된다. <발레교습소>는 19살짜리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수능 시험을 본 뒤 대학 입학 때까지 3개월 동안 벌이는 이야기다.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고 따뜻한 성장영화다. 촬영시기가 있어서 빨리 들어가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시네마서비스의 내부 사정상 당장 투자를 받기 힘들게 됐다. 감독이나 제작팀과의 신뢰를 위해서도 다른 투자사 물색은 절실했다. 결국 다른 데서 투자를 받게 된 거다. 투자사 입장에서 한편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여선생 vs 여제자>도 함께 투자받는다.

-시네마서비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나.

=아니다. <발레교습소>의 경우 강 감독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거다. 그는 나의 영원한 ‘오야지’다. 영화를 가르쳐준 사람 아닌가. 시네마서비스와의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점은 있다. 새로 관계를 맺는 투자사의 경우에도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필요할 때만 써먹고 빠지는 것은 도리상 어려운 일이다. 사실, 밖에 나가서 투자를 받아보니까 시네마서비스의 우산이 그렇게 넓고 큰 줄 몰랐다. 이번 작품만 같이 하고 곧 시네마서비스로 돌아갈 것 아니냐면서 투자를 기피하더라. 결국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도와준 데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 않겠냐.

-어쨌건 시네마서비스와의 관계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겠다.

=그동안 100% 시네마서비스의 투자를 받았으니까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 해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혈의 누>는 이미 시네마서비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이시명 감독이 맡을 2005년작 <블루앤젤>에도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하기로 이미 결정됐다.

-여러모로 큰 변화가 느껴진다.

=올해는 좋은영화의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시네마서비스 아닌 곳으로부터 투자를 받으면서 새로운 자본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 또 무협, 코미디, 성장영화, 대형 액션영화 등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데다 그런 장르 안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갖춘 영화들을 한꺼번에 만들어야 한다. 좋은영화로서는 제2의 도약기라고도 할 수 있다.

-<아라한…>은 촬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됐다.

=지난해 4월12일 크랭크인했다. 10월7일 크랭크업해서 편집, CG 등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워낙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다 보니 촬영을 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2월 말쯤 끝날 예정이다. 3월 초부터는 2개월 정도 음악, 사운드 작업을 한다. 칼싸움이나 장풍 일으키는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짜 같지 않아야 하므로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강 감독님이 고마운 게, 자본 회수의 부담이 있을 텐데도 애초부터 “오래 걸리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신있게 만들어서 내놓아라”고 배려해줬다.

-다른 영화는 어떤 것들인가.

=<혈의 누>는 조선 정조시대 한 섬마을을 배경으로 한 형사추리물인데, 기존 사극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고민 중이다. 2년 반째 준비하고 있는데 <다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별화하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고 있다. <여선생 여제자>는 젊은 남자교생을 두고 29살 여선생과 초등학교 5학년 여제자가 사랑싸움을 벌이는 얘기다. 장규성 감독 특유의 코미디 감각이 잘 발휘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성일 감독의 데뷔작 <애수>(가제)는 <영웅본색>풍의 대형 액션영화이고 김상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김동욱 감독의 로맨틱코미디도 준비 중이다.

-류승완 감독과는 <피도 눈물도 없이>, 변영주 감독과는 <밀애>, 장규성 감독과는 <재밌는 영화>와 <선생 김봉두>를 같이 했다.

=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갈 것 같다. 돈 욕심은 별로 없는데 사람 욕심은 많아서 한번 연을 맺으면 놓지 않는다. 잘 몰랐는데, 나와 일을 같이 한 사람들은 내게 남성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변영주 감독이나 류승완 감독과 잘 맞는 면이 있다고 본다. 게다가 나는 남자영화, 그러니까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감정이 있는 영화가 좋다.

-밖에서 투자를 추진해보니 요즘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 분위기는 어떠하던가.

=굉장히 안 좋다. 경제가 불황국면이라 영화쪽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아무리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됐다 해도 2~3년 전만은 못할 것이다. 그 와중에도 이 정도 선을 유지하는 것은 <실미도>를 비롯한 한국영화가 잘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기존 자금은 안 빠져나갈 것 같다. 요즘 영화들이 많이 제작에 들어가긴 하는데 눈먼 돈도 많고 제작 도중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내 주변에도 그냥 몇억원씩 대겠다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파트너를 필요로 한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올해 한국영화 시장을 전망한다면.

=단지 제작자의 육감이긴 하지만, 불황과 관련해서 특히 올해는 코미디가 잘될 것 같다. 물론 싸구려 코미디는 이젠 안 먹힌다. 관객이 질렸고 눈도 높아졌다. <발레교습소>가 나름대로 자신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풀몬티> 같은 느낌의 영화인데, 분명 불경기일 것이기에 희망을 주는 이 작품이 먹힐 것으로 보인다. 빨리 추진하는 건 내년으로 미루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제작자로서 궁극의 꿈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경영이나 비즈니스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꿈이 있다면 애니메이션과 TV 미니시리즈를 만들어보고 싶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서 저렇게 영화 같은 TV시리즈를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영화적인 발상과 역량이 결합된다면 TV드라마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또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과 판타지를 좋아한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영화적 드라마 구조만 보완되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차분히 준비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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