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 영화]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2004-01-16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맹인검객 ‘쿨하게’악당 베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신작 〈자토이치〉가 30일 개봉한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이라는 묵직한 명패에 걸맞지 않게, 이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 영화 중에 가장 가볍다. 만화와 텔레비전 시리즈로 일본에서 유명한 맹인검객 자토이치 이야기를 각색하면서 기타노 다케시는 만화처럼 익살스럽고 경쾌하게 내달린다. 급기야 끝부분에선,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임에도 출연진들이 다수의 엑스트라와 함께 나와 서구식 탭댄스를 춘다. 흥겹고 안무가 잘 된, 그러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뚱딴지 같은 춤장면을 덤으로 얹어주는 그 배려가 미울 이유는 전혀 없지만 조금 실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안마와 도박으로 먹고사는 떠돌이 맹인 검객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가 한 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악당 패거리 긴조 일당이 장악하고서 상인과 농민들을 등쳐먹고 산다. 같은 마을에 관직을 지녔던 무사 핫토리(아사노 다다노부)가 들어온다. 사랑하는, 그러나 병들어 누워 있는 한 여인을 위해 핫토리는 긴조 일당의 살인청부 무사로 ‘취직’한다.

영화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긴조, 핫토리 패거리와 자토이치의 대결이다. 어릴 때 긴조 일당에게 부모을 잃고 게이샤로 떠도는 남매, 도박에 빠져 세월아 네월아 사는 노총각 신키치 등이 자토이치와 함께 다니면서 유머와 곁가지 이야기를 보태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핫토리의 경우도 병든 여인과의 전사를 살짝 내비치기만 할 뿐이다.

아무래도 볼거리는 칼싸움이다. 총에서 칼로 옮겨와서도 기타노 다케시답게 액션이 간결하다. 칼이 맞부딪치는 합이 세번 이상 가는 일이 없다. 대부분이 단칼에 승부가 나는 이 액션은 베는 동작 못지않게, 칼을 뽑기 전과 베고 난 뒤의 모습이 멋스럽다. 사지가 뎅겅 잘려 나가고, 피도 많이 솟구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화시켜버리는 듯한 폼을 잡는 〈하나비〉나 〈소나티네〉의 폭력 장면과 비교하면 깊이감이나 여운이 많이 떨어진다.

기타노 다케시는 스스로 연기한 자토이치의 캐릭터를, 마을의 착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고 단지 악당을 죽이기만 하는 쪽으로 바꿨다. 여기서 자토이치는 서부극의 혼자 다니는 주인공을 닮은 듯도 하지만, 가벼운 이 이야기에서 캐릭터가 뿜어내는 멋은 표피적인 쿨함에 그친다. 그래도 볼 근육 떠는 것만으로 복잡다기한 감정을 표현하는 기타노 다케시가 눈마저 감고 연기하는 맹인 무사의 모습은 충분히 그럴듯하다. 부담 없이 즐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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