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은 꽃미남목(目) 미소년과(科)에 속한다. 세월도 비껴가는 동안(童顔)과 저 눈웃음은 신이 여자라는 증거다. ‘맑다’류의 형용사로 설명할 수 있는 그의 미모는 그러나 고고하게 떠다니지 않는다. <꼭지> <킬러들의 수다> 등에서 확인된 친근함과 유약함 때문에, 오히려 낮은 데서 여성의 보호를 요청해온다. 자신의 이런 이미지를 잘 아는 원빈은 그것만 살려서 가는 게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이미지로 봐주는데 굳이 그걸 또 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꽃미남목 미소년과의 배우종(種)들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으로 높은 이 계통에서 양순한 미소를 조금 헤프게 흘리고 타고난 미모를 좀더 자랑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했던 걸 또 한다는 게 지겨워요”라고 대답하는 원빈은 단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을 뿐이다. “방송도 많이 나가서 여러 사람을 즐겁고 유익하게 해줘야 되는데 제가 그런 걸 잘 못해요. 노출 많이 안 하면서 고급스럽게 간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단호한 원빈이 세상에 잘 노출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두 배우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끼니를 굶고 와서 스튜디오 내로 음식이 주문돼왔지만 원빈은 “먹고 나서 다시 인터뷰하자”는 권유를 절대 듣지 않았다. 기질상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없는 그에겐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현장에 9개월을 매여 있는 동안 잠시 짬을 내 CF를 찍는 것도 방해였다. 원빈은, 선택된 한 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그것은, 그의 말에 따르면, 책임감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 때문이 아닌,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그 자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자기 자신 외에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두 번째 출연작 <태극기…>에 대해서도 ‘부담은 되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다’라는 식으로 쉽게 결론내지 않는다. “부담이 왜 없겠어요. 사람들의 기대가 어떤 건지도 알아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애가 전쟁영화에 나왔으니 어떻게 했나 보자, 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일할 때는 아무것도 생각 안 해요. 괜히 위축될 수도 있고 일에 집중하기도 힘들어요.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 때문에 내 일을 지장받고 싶지는 않아요.”
2남3녀 중 막내로 자란 원빈은 저마다 바쁘게 사는 식구들 속에서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웠다. 시쳇말로 ‘도쿠다이’(단독)처럼 살아온 그는 누군가의 강요나 제재를 불편해하는 대신 책임질 일을 내다보기 때문에 단 한 걸음도 무겁게 뗀다. 이같이 성숙하고 강인한 품새는 그러나 아버지나 형의 것이 되기에 좁아 보인다. 자신을 다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가려는 폐쇄적인 자기방어 같은 인상도 준다. 제 몸 하나 간신히 추스를 정도다. 그래도 최소한 무언가에 짓눌리진 않을 테니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형 ‘진태’에게 와락 안겨 그 어깨에 눈물을 묻게 될 ‘진석’의 얼굴은, 전에 알았던 유약하고 친근한 원빈의 얼굴은, 아무 데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