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개봉예정이었으나 큰 영화들의 등쌀에 여러 번 개봉이 연기됐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이 1년여 만에 개봉한다. 프랑스 영화계의 유망주인 오종은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여러 번 작품이 소개돼 젊은 관객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감독. 지난해에는 그의 최신작 <스위밍 풀>이 개봉됐다.
은 일단 출연진 목록이 화려하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에마뉘엘 베아르, 그리고 최근 개봉한 <피터팬>에서 팅커벨로 분한 루디빈 사니에르 등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인들을 사로잡아온 스크린의 뮤즈들이 모두 모인다. 이 목록은 불과 삼십대 초반의 오종 감독이 프랑스 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입지를 보여준다.
폭설로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성탄절 아침, 아버지 방에서 하녀 루이즈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달려간 식구들은 등에 칼이 꽂인 채 싸늘하게 식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에게 연락도 할 수 없는 고립 속에서 하나의 단서만이 사건의 실마리를 던진다. 밤새 개들이 짖지 않았다는 것. 범인은 낯선 인물이 아니라 집안 사람들, 곧 남자의 아내와 두 딸, 장모와 처제, 여동생, 그리고 두 명의 하녀 가운데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되는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에서 영감받았을 법한 범죄 스릴러이지만 악동으로 소문난 오종은 여기에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의 과잉된 분위기를 덧입힌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뭔가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순간 배우들은 태연하게 일어나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노래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진행되는 거실은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도록 평면적으로 꾸며져 있으며 원색이 두드러지는 배우들의 옷차림도 의상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연극적 요소 가운데 하나다.
고립된 집 아버지 죽인 범인은? 드뇌브·위페르등 연기 돋보여영화는 살인범을 찾는 것처럼 집안의 곳곳을 지만 여기서 정작 드러나는 것은 숨겨진 가족사의 비밀이다. 지난 밤 아버지의 방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동업자와 바람난 엄마의 결별 통고와 어린 딸의 임신 소식, 처제의 사랑고백 등 대형사고가 시간대별로 터져나왔던 것. 여기에 여인들의 묘한 알력과 갈등 속에서 근친상간, 동성애 등 오종 감독이 애착()을 보여온 주제들이 수면 위로 슬그머니 떠오른다.
이야기도 매력적이지만 역시나 명배우들의 빼어난 앙상블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드뇌브의 우아함와 위페르의 냉철함이 코미디 속에 크림처럼 녹아들어 상큼하고 달콤한 맛을 자아낸다. 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