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는 정말 최초로 전국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 추세로 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친구>가 갖고 있던 최고 흥행기록(전국 820만명)을 다음 주중 돌파하는 것이 기정사실로 드러난 지금 시점에선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과연 강우석이다. <실미도>가 처음 공개된 뒤 있었던 설왕설래를 무색게 하는 이 흥행기록은 지난 8년간 한국 영화계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혔던 그의 이름에 또 다른 광채를 더하고 있다. 강우석 감독에 대한 영화인들의 질시나 선망이 이제는 “우리, 강우석 앞에선 모두 조용히 있자”는 체념 혹은 외경심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한 영화인은 “이건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뛰어넘는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정말 세상엔 재운을 타고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실미도> 흥행에서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영화가 시네마서비스의 운명을 다시 한번 상승궤도로 돌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잇단 흥행실패로 위기에 몰렸던 시네마서비스는 <실미도>로 다시 일어섰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던 넷마블과 분리한다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기막힌 역전극은 이번만이 아니다. 1996년엔 부도위기까지 몰렸던 시네마서비스가 <투캅스2>로 재도약했고 1999년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추락하던 시네마서비스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하늘이 돕는다, 는 표현을 강우석 감독에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강우석 감독의 이런 재운에 호기심을 갖는다면 그가 집에선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사진기자 오계옥씨가 집에서 돈관리는 누가 하느냐고 묻자 강우석 감독은 “가정도 경영해야 한다”며 특유의 사업적 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12월 중순에 아내에게 내년 1년 예산안을 받아서 1년치 가계생활비를 한번에 준다고 말한다. 아이들 유치원비×12, 생활비×12, 관리비×12, 예비비 등 각 항목을 짜서 받은 1년 예산안을 검토하고 수정해서 1년 예산을 주는 식이다. 물론 이게 강우석의 성공비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다른 구석이 없다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있겠는가?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태도도 남들과 같지 않다. <실미도> 개봉 직전 인터뷰에서 오만하다 싶을 만큼 자신감 넘치는 말(몇몇 감독에게 직격탄을 날리는)을 하던 그는 <실미도>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다음인 이번 인터뷰에선 오히려 겸손한 모습이다. 아무튼 다시 강우석 감독의 말을 듣고 싶어진 건 그가 거듭 대형사고를 치는 동안 한국 영화계가 참으로 흥미로웠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래도 <실미도>는 그 절정인 것 같다.
-지금까지 몇만명 정도 들었나.
=764만명 정도. 설 연휴 동안에도 웬만한 큰 극장들은 죄다 매진이었다. 극장쪽 얘기 들어보니까 아직도 50대, 60대 관객 중에 매표구에다 대고 표 어디서 파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더라. 서울의 3.5배 정도 스코어가 전국 스코어인데, 그 이유가 극장 없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가까운 도시로 영화를 보러 나온다는 거다. 홍천 같은 데서는 버스 대절해서 보러 온다더라.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지방이 많고, 관객층이 굉장히 폭넓고. 아무튼 이런 흥행을 예상했었나.
=아니, 난 그런 예상은 안 했다. (웃음) 사실 인구 대비 1천만이란 스코어란 건 바람이지. 주문처럼 한번 외워본 거다.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줘도 사실 한국에서는 <살인의 추억>이 들었던 560만명, 이게 맥시멈 스코어다. <쉬리> 때도 도시 아닌 데 사는 아저씨들이 나와줘서 620만명 정도의 스코어였다. 그 정도까지 쪼아보자는 건 있었지만 이 스코어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뭔진 모르지만 이상한 바람이 분 것 같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로 가보자. 처음에 저 포스터와 비주얼이 공개되고 예고편이 나왔을 때는 느낌이 너무 칙칙해서 과연 사람들이 보러 올까 싶었다. 굉장히 무거울 것 같고. 100억원이란 돈을 썼는데 그 정도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우려됐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엄청난 흥행이 되는 걸 보니까 기존에 가졌던 생각이 잘못된 건가 싶더라.
=전에 인터뷰할 때도 그런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제발 좀 영화 같지 않게 해보려고 촬영감독, 조명감독 하는 사람들한테 조명할 시간도 안 주고 거칠게, 너무 세련되게 가지 말고 너무 빤짝빤짝하게 가지 말고 사건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다큐멘터리처럼 흔들어주라고 했던 게 관객한테 편하게 다가온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야기는 무조건 쉽게, 쉽게 풀었다. 기승전결 분명하게. 그게 오히려 연기자들한테도 편하게 전달됐고 그래서 편하게 한 연기들이 사람들한테 솔직하다, 쉽다, 감동이 자연스럽다는 식으로 입을 타고 막 전해졌다.
-역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로 묻고 싶은 게 있다. 초반 촬영 중에 러시를 보고 제작진이 실망을 많이 했었고, 기대했던 화면이 안 나왔기 때문에 나중에 방향을 전환했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역사적 소명의식이 투철한 놈도 아니고 그냥 <반지의 제왕> 같은 블록버스터랑 붙자, 한번 가보자, 했다가 나중에 든 생각이, 내가 사람들을 정말 재밌게 해주려고 영화적으로 풍성하게 트릭 쓰고 했다가는 맞아죽겠다는 거였다. 어쨌든 실화에 바탕을 둔 거니까 장난치치 말자고 생각했다. 콘티 작업하는 사람한테 내가 한 얘기가, 담백하게 끌어내자, 솔직하게. 그런 거였다. 다들 드라마에 꽂혀 있어서 영상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촬영감독은 노래를 불렀다. 촬영상 하나도 못 받겠네요. 그런데 감독상은 받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야 드라마. 드라마를 위해 영상을 희생시키겠다고 노래를 불렀다고. 우리가 빨리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영상에 집착했으면 절대 빨리 못 찍지. 그런 거다. 한 1/3 찍은 거 보고 야, 이거 화면이 왜 이래? 안 되겠다, 지금부터 촌스럽게 가자, 그건 아니라고. 내가 영화 한두편 찍었나. 일부러 촌스럽게 가자고 한 게 아니라 못 찍어서 그랬는데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했다면 정말 나쁜 놈이지. 의심나는 사람 있으면 촬영감독한테 물어보라고.
-일반 관객의 반응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게 있나. 의외의 반응이라 놀랐다거나.
=솔직하게 얘기하면, 흥행이 적당히 되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또 내가 신인감독이면 티내고 돌아다니겠는데, 내가 흥행 많이 해봤잖나. 흥행 잘됐을 때 겪는 고초가 있다. 그거 겪기 싫어서 거의 숨어 있었다. 사람들 거의 안 만나고 경주 어머니 집에 가 있으면서 술을 마셔도 동네 사람들을 불렀다. 다른 영화인들 앞에 일부러 안 나타나려고 했다. 우린 파티도 하나도 못했다. 500만명 때 모이자고 그랬다가 핑계대고 684만명 때 모이자 그랬는데 그것도 없애버리고 조용히 있었다. 아예 안 만나. 어떻게 보면 이건 일종의 현상인데, 우리가 현상을 너무 즐기면 다른 영화를 준비하고 다르게 찍어왔던 사람들이 굉장히 곤혹스러워진다. 스코어는 우리가 떠들지 않아도 다 공개된다. 반대로 조금 교만을 떨자면 의도한 대로 너무 관객이 많이 봐주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다. 내가 이렇게 관객을 읽었나? 사실 그 정돈 아닌데(웃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 하고 수를 던져본 건데 관객이 거기에 확 꽂혀버린 거야. 고맙긴 한데 솔직히 당혹스럽지.
-수익으로 따지면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제작진에게 보너스는 많이 주나.
=150억원 정도가 순수익이다. 해외 빼고. 극장하고 공중파하고 DVD랑 비디오, 이 정도. 하지만 아시다시피 플레너스는 어마어마한 소액주주들이 있는 상장기업이라서 내 마음대로 이만큼 잘라내서 이건 내가 들고간다 이러면 난리난다. 대신 회사가 지금 벌어들인 수익이 150억원 이상 되는 느낌이 들어서 회사한테 이야기할 생각이다. 일정 부분 내놔라. 그리고 나도 내 것도 좀 내놓고 이렇게 해서 스탭들한테 즐겁게 나눠줘야지.
-얼마 전 시네마서비스가 플레너스와 분리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구체적인 회사 분리작업은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가.
=그건 경영진이 하기 때문에 나는 잘 모른다. 재무진들이 이런이런 케이스로 분리합시다, 그러면 난 선택하면 된다.
-결국 분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늘 얘기했던 그대로다. 나는 영화가 몇개 망해도 그렇게 동요하거나 마음속으로 누굴 원망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다음에 또 될 건데 뭐. 올해 안 되면 내년에 가보지, 뭐. 근데 상장사의 논리는 그게 아니다. 올 1/4분기 좋았으면 2/4분기는 더 좋아야 하고, 올해 100억원 벌었으면 내년엔 200억원 벌어야 하고. 난 그거 못 맞춘다. 죽어도 못해. 늘 내가 해왔던 건 내가 보너스 좀 받아가지고 몇억 꼬불쳐놓고 있다가 회사가 좀 어려우면 그거 던져놓고 다시 가고, 그렇게 영화사를 이어온 거였다. 몇번이나 말했지만 내 스타일과는 굉장히 안 맞는 부분이 많다. 내가 지금까지 이 많은 패밀리를 어떻게 끌고 왔는데. 사재를 어떻게 털어서 끌고 왔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 관리 못한다고. 하다가 한두편 망했다고 다 걷어내면 누가 나와 같이 일하려고 그러겠나. 코스닥에 가고 상장 들어가고 그러면 무슨 펀드, 이래서 떼돈 들어오고 무책임하게 몇백억원씩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애들이 코스닥에만 가면 수백억원씩 까먹어도 되는 줄 안다. 그거 다 주인이 있는 돈이다.
-어쨌든 현실적으로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 극장체인인 프리머스시네마가 그렇다. 즉 지금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잘 돌아가더라도 그 투자금액을 벌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상장기업의 힘을 빌려야 하는 거 아닌가.
=독립적으로 프리머스만 상장하겠다고 하면 그건 충분히 돈으로 밀고 갈 수 있다. 그런데 시네마서비스는 상장회사로 가면 안 된다. 그러려면 작품 수를 줄여야 돼. 현재 우리 라인업 중에 돈 벌 만한 영화들만 찍어내면 충분히 100억원 벌 수 있지만 그렇게 가면 그동안 양아치로 영화 몇개 만들었던 옛날하고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우리가 편수를 줄이면 전부 다 줄어든다. CJ도 줄이고 전부 다 줄일 거라고. 그건 절대 반대다. 누가 나보고 너 올해 영화 다섯편 해서 100억원 벌래, 열편 해서 20억원 벌래, 그러면 난 열편 해서 20억원 번다. 시네마서비스는 궁극적으로 영화제작에 관해서는 1등이 돼야 한다. 돈벌이 1등말고. 영화계에서 봤을 때 저 회사는 절대 없어지면 안 돼, 이런 자리는 지켜가야 한다. 그래서 편수, 편수 하다가 내가 몸살이 나는 거다. 시장점유율 30% 지키고, 수익 제일 높아야 하고, 이런 건 상장의 논리이고 시네마서비스의 논리는 작품 편수, 그리고 장르의 다양화, 이런 면에서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플레너스에서 분리하더라도 자금 운용에 지장없나.
=난 없다고 본다. 시네마서비스의 경영권을 간섭하지 않는 양질의 돈들은 충분히 있다. 투자하고 싶다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지난해에 내가 충무로 펀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물론 사재를 털어서 한 거지만 내가 한다고 하니까 다른 영화인들이 모아준 돈이 60억원이다. 그게 지금 돌고 있다. <바람의 파이터> <달마야 서울 가자> <꽃피는 봄이 오면> 등등. 그건 시네마서비스의 배급력과 무관하다.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하든 안 하든 편수를 늘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게 기본이다. 시네마서비스가 돈을 다 주고 나와도 나는 또 투자받을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프리머스나 아트서비스는 시네마서비스와 성격이 좀 달라서 앞으로 CJ든 쇼박스든 시네마서비스가 다시 접촉할 거다, 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이제 (시네마서비스의) 가격을 다 매겼는데 내가 도저히 인수할 가격이 아닌 어마어마한 금액일 때 얘기다. 나도 그동안 우리 회사가 얼마나 커져 있는지 잘 모르니까 정말로 엄청난 가격이면 나도 못한다. 그러나 내가 적당히 부담되더라도 갚을 수 있다면 한번 해봐야지. 이 모든 건 <실미도>가 쫑했을 때의 자금력, 그리고 그때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할 문제다.
-<공공의 적2>는 언제쯤 들어가나.
=8월. 설경구가 <역도산>을 4, 5, 6월 찍고 7월 한달은 살 빼야 한다고 하니까. 시나리오는 거의 다 나왔다.
-어떤 이야기인가.
=설경구가 주인공인 검사로 나온다. 검사인 설경구가 우리 시대 공공의 적을 파헤쳐 고발하는 거다. 그 공공의 적이 누구냐고? 그건 아직 밝힐 수 없다. 시대가 참 묘해서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선한 사람이 주인공을 하고 선한 것을 그려내면 사람들이 뭔가 비아냥거리는 게 있었는데, 이제는 워낙 사회 자체에 정의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의라 그러면 그렇게 좋아한다. 영웅 좋아하고, 약자편 좋아하고. 이제는 사회를 더이상 비틀어서 잘난 척하면 안 되고 정공법으로 들이대야 한다. <살인의 추억>도 정공법으로 들이댔기 때문에 관객이 열광하지 않았나 싶다. 모자라지만 인간적인 형사, 부족하지만 좋은 모습. 지금 비리 경찰이 나와서 막 난리 부리면 저거 뭐야, 그럴 거 같다, 시대 분위기가.
-아무튼 <실미도>가 이렇게 터지는 걸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건, 강 감독은 확실히 재운이 있다. (웃음) 사실 지난해에 시네마서비스가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막판에 몰렸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순간에 <실미도>가 터졌다.
=난 하늘이 날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 한다. ‘넌 평생 영화 찍어야 돼. 많이도 찍고, 하여간 영화에 관해서만큼은 최선을 다해라. 그러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다 도와줄게.’ 이러는 것 같다. 한두번이 아니다.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가 뒤에 터져서 간신히 나오고…. 전에도 <자귀모> 직전에 이번 하나만 더 망가지면 부도난다 그랬을 때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흥행이) 됐다. 그게 부도를 막아주고 회사가 다시 한번 일어났다. 그런 경험이 너무 많아서 이젠 어느 정도 궁지에 몰리면 아, 하나 나올 때 됐구먼, 이런 생각이 든다. (웃음) 영화에 관한 한 하늘로부터 버림받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