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야만적 하드보일드, <자토이치>의 아사노 다다노부
2004-02-04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아사노 다다노부는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처럼 초연하고 강인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배우들에겐 분한 일이겠지만, 그 자신도, 그와 함께했던 감독들도, 모두 그렇게 말한다. 가장 치명타는 미이케 다카시의 발언일 것이다. <이치 더 킬러>에서 아사노 다다노부를 탈색한 머리의 킬러로 만들었던 그는 “아사노 다다노부와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가능한 한 하드하게 연기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노력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를 능가하지 못할 테니까”라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아사노 다다노부가 가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이 더욱 마음에 든다고 무심하게 말하는데, 한번 보면 잊기 힘들어서 많은 감독들이 스크린에 비추고 싶어하는 그만의 서늘한 기운은 어느 곳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

<타임> 아시아판은 “아사노 다다노부는 배우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성에 무관심할 수 있다”고, 주류와 인디를 망라하는 그의 다양한 경력을 분석했다. 1/4은 미국 혈통인 아사노 다다노부는 눈에 띄는 혼혈아의 외모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음악에 몰두해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밥 말리나 시드 비셔스처럼 될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히피처럼 살았던 부모 탓에, 잘생기고 조숙한 아들은 십대 시절부터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도, 아사노 다다노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함께 오디션을 받으러 온 아이들이 왜 보통 소년들처럼 행동하지 않는지 이상했다. 그들처럼 바보 같아 보이긴 싫었다. 그래서 평소에 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결정했다.” 내밀한 외로움, 두고 와야 했던 음악, 술도 담배도 약도 하지 않고 두 자식만 아끼는 고집센 순수함. 한 사람이 모두 가지기 힘든 이런 성질들이 기이하게도 아사노 다다노부라는 남자의 눈빛과 태도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와이 순지의 <프라이드 드래곤 피시> <피크닉>,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 이시이 소고의 종잡을 수 없는 영화 <고조> 등이 이 말없는 남자를 포획했다.

그는 떠들썩한, 뮤지컬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신작 <자토이치>에서도 여전히 말을 아낀다. 그러나 그 과묵함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자토이치> 이후 가진 일본잡지 <컷>과의 인터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은 채 서 있다면, 그것대로 신기한 매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파리>를 찍은 다음부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서. 병든 아내의 약값을 벌어야 하지만, 분신과도 같은 칼을 놓을 수는 없는 무사 하토리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괜찮았을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의 성장과 고민의 열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피크닉>의 파트너이자 가수인 차라와 결혼해 “매우 상식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타고난 상식적이지 않은 매력 외에 또 무언가를 더해가게 될 듯하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이상한 남자를 꼭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다고 말했다. “그가 지성을 보여줄지, 야만적인 힘을 보여줄지, 절대 모르겠다”고.

사진제공 SY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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