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현실주의 팔색조, <말죽거리 잔혹사>의 박효준
2004-02-04
글 : 박은영
사진 : 정진환

영화 보고 나오면서 때 아닌 햄버거 타령이 늘어진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소개하는 다양한 인간군상 중에서도 ’그래, 저럴 수 있지’라고 여러 번 무릎을 치게 하는 인물이 햄버거인 까닭이다. 함재복이라는 이름과 두둑한 살집 때문에 햄버거라 불리는 친구. 만년 전교 꼴등으로 포르노 잡지를 파는 그는 친구들 사이의 권력관계에 따라 돌변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신의를 저버리지는 않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다. “감독님이 워낙 캐릭터를 잘 만들어주셨고, 애정을 많이 쏟아주셨다”지만, ‘신인배우’ 박효준의 다부진 연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생생한 인물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달랑 두편(<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영화에 출연했을 뿐이지만, 박효준은 매번 교복을 입었고, 의리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배신남을 연기했다. 우연일까? “제가 ‘얌생이’처럼 생겼나보죠.” 그보다는 홀로그램 스티커처럼 수시로 변하는 얼굴 때문이랄까. 그의 얼굴은 대체로 험상궂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일 때도 상대는 경계를 풀 수 없다. 하지만 환하게 웃을 때는 딴판이다. 순하고 귀여운 얼굴이 당장 장난을 걸어올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눈 내리는 오후 스튜디오의 정적이 불편했던지, 카메라 앞에서 이소룡 포즈를 취하던 그는 별안간 “아비요옷~” 하는 괴성을 지른다. 그리곤 몰래카메라에 성공한 이경규처럼 배를 잡고 웃는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자신이 대견하다는 듯.

말죽거리 청춘들이 세상을 깨우친 1978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소룡의 시대가 가고 성룡의 시대도 간 뒤에 서태지를 우상으로 섬겼던 그지만, 박효준의 학창 시절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박효준에 따르면, 학창 시절의 그는 이정진이 연기한 우식이나 김인권이 연기한 찍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좀 놀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안 믿는 것이 억울하다고. “교실 뒤쪽에서 거울 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뒷문이 열리는 거예요. 불량 서클 선배들이 후배들 영입하는 거였는데, 저를 보더니 한눈에 찍더라구요.” 풍채 좋고 인상 강렬한 덕에 ‘캐스팅’된 뒤로 서클 리더를 지내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줄곧 ‘콩밭’에 가 있었다. 어려서 TV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의 최민수를 본 뒤 막연하게 품기 시작한 배우에 대한 동경을 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연기학원을 기웃거리다, 대학도 결국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두편의 영화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박효준은 대단한 학구파다. 촬영 끝나고 운동도 하고 춤도 배웠는데, 취미생활로서가 아니라 ‘준비된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 학교 선배들이랑 스터디 그룹을 짜서 이런저런 공부도 하는 중이다. “머리가 없어 보이는 배우는 되고 싶진 않거든요. 내 안에서 변하지 못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고 봐요. 기교 보다는 경험이 먼저구요. 그래서 ‘이번엔 어떤 걸 보여줄까’ 기대하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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