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라이벌이 또 있을까.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금 영화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이 두 영화를 만든 강우석과 강제규는 한국 영화시장의 규모를 번갈아가며 늘려 왔다. 한국 영화가 아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주눅들어 있던 99년, 강제규 감독은 <쉬리>로 500만명 관객선을 돌파하는 전국 597만명의 흥행기록을 썼다. 2~3년에 한번 극장에 올까말까 하는 사람들을 대거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로 900만명을 넘어 1000만명 고지 점령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실미도> 상영관에선 수십년 만에 영화를 보러왔다는 60~70대도 눈에 뜨인다. <실미도> 개봉 뒤 불과 40여 일 만에 다시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들고 나타나 <실미도>보다 빠른 속도로 첫 주말 흥행 170만명을 넘어서면서 바짝 따라붙고 있다.
감독이, 한국 영화 제작비의 상한선을 깨는 대작의 제작까지 직접 맡으면서 흥행의 상한선까지 교대로 깨나가는 이런 일은 외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 듯하다. 그 두 주인공을 지난 9일 함께 만났다. 약속장소인 신라호텔 커피숍에 강우석 감독이 먼저 들어왔다. 바로 뒤 강제규 감독이 나타나자 한마디 한다. “넌 왜 매번 나보다 늦게 오냐”(강우석 감독이 강제규 감독보다 한살 위다.) “아냐, 형. 6분 전에 왔어.” 그러면서 둘이 웃는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는 기질로 치면 이 둘만한 라이벌이 없음을 충무로가 다 안다. 그렇게 모두 알고 있음을 자신들도 알기 때문에 둘이 웃는다.
둘은 영화계에서 알게 된 지 30년이 다 돼가고, 강우석 감독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의 시나리오를 아직 데뷔전인 강제규 감독이 쓰기도 했다. 감독에 더해 직접 제작, 배급까지 나섰던 강우석 감독은 9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의 1인자가 됐지만, 독립심 강한 강제규 감독은 독자노선을 걸어갔다.
그리고 <쉬리>로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제작자로서 강제규는 제작한 영화의 물량이나 개별 영화의 흥행에서 충무로의 공룡 시네마서비스를 이끄는 강우석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수년간 충무로 파워 부동의 1인자인 강우석은 <공공의 적>으로 다시 감독을 시작했고, <실미도>로 흥행 지존의 자리까지 얻었다. 그건 내 자리라는 듯, 강제규도 다시 감독으로 돌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세차게 휘날리며 쫓아간다. 이 둘의 모습이 꼭 영화같다.
강우석 강제규가 털어놓는 실미도, 태극기. 관객 1000만
힘찬 <태극기...> 할리우드랑 붙어볼 만. 흔들림없는 <실미도> 편안한 감동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강우석 | <태극기 휘날리며>는 내가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가 나질 않아 못하는 걸 엄두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존경할 만하다. <쉬리>나 <은행나무 침대>도 대본 보면 다들 포기할 작품들 아니었나. <태극기…> 보면서 화면 퀄리티도 그렇고 이제 못할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의 제왕> 보고 입을 벌렸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군중 신이 다르냐.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 보면서 느끼는 진짜 전쟁이라는 느낌, 거기 비해 뭐가 뒤지냐. 벌써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심취해 있는 일본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처럼 자신있게 밀어붙여도 후회 없을 것 같다.
드라마는 내가 찍기 어렵겠다 싶은 게 뭐냐면 어둡다. 따뜻하고 예쁜 형제애를 담고 있음에도 점점 탁해지고 힘이 들어가고 슬프다. <실미도>의 드라마는 웃을 수 있는 구석이 있다. 편하고 나른하게 가는 상황이 있다. 이 영화는 전쟁상황 속에서 동생 살리려 애쓰는 걸 보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나같으면 견디기 힘드니까 내 터치로 가볍게 갔을 텐데 그게 이 영화에 맞았을까. 스타일이 다른 거다.
강간·훈련·탈출병 학살…실제 들은대로 찍었으면‘등급 보류’나왔을 것
강제규 | 지금까지 형(강우석 감독) 작품을 보면 형이 가지고 있는 영화적 색이 분명히 있다. 나는 몇편 못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영화는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드문드문 나오니까 세게 힘줘도 봐줄 만하지 않았을까. 형처럼 많은 작품하면서 나처럼 하면, 만드는 사람 스스로가 부담을 느낄 것이다. 형은 많이 해왔기 때문에 버릴 것 버리고 가볍게 가고 그래서 편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다.
강우석 | 나같으면 화면 색을 가볍게 바꿨을 거다. <실미도>가 끔찍한 이야기인데도 편하게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화면 자체가 라이트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화면이 흔들리고 파편이 날아오면서 전쟁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파워풀하다. 팔 다리 잘려 나가는 장면도 나는 찍기 싫다. 그게 영화 만드는 성격 차이일 텐데, 제규(강제규 감독)는 사람이 불타는 걸 직접 보여주지만 나는 못 보여준다. 원래 이 친구가 나보다 잔인하거든.(웃음)
강제규 | 내 기준에서는 많이 푼 거다. 형은 더 풀었겠지만. 난 스필버그의 표현 중에 ‘넌 스톱 슈퍼 액션’이란 말을 매우 좋아한다. 두시간 동안 롤러코스터 타고 가는듯한 느낌을 좋아해서 과할 만큼 몰고 가는 게 내 스타일이다. 때로 웃음, 관조가 필요한데 난 그걸 잘 못한다. 공형진을 캐스팅한 게 그런 고민의 결과다. 두 형제의 이야기가 너무 처절해서 주변 인물을 가볍게 가려고 한 거다. 그런데 팬 사이트에는 공형진을 빨리 죽였다고 원망이 쏟아진다.(웃음)
강우석 | 딱 적당한 부분에서 죽었지. 나는 격렬한 전투신보다 전쟁나기 전에 식구들이 물가에서 노는 장면, 진석이가 돌아왔을 때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같은 따듯한 장면이 더 기억난다. 그런 따듯한 화면이 좀 더 많았더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강제규 | <실미도>는 이야기 구조에 흐트러짐이 없고 방향성에 혼선의 여지 없이 끝까지 가져간 게 성공을 가져온 가장 큰 힘 같다. 형의 원래 스타일이 미장센 같은 데 큰 중요성을 안 두고 찍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큰 기대를 안 했다. 예쁘게 포장하거나 어떤 영화적 미학을 발휘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찍듯 찍겠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만약 다른 영화 찍으면서 그렇게 했다면 안 맞았을 수도 있겠지만 소재가 실미도 사건이니까 그렇게 가도 분명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영화 찍을 때 다른 것들 신경을 많이 쓰니까 <실미도>에서 부분적으로 아쉬운 게 있었지만 그게 영화의 감동과 느낌을 갉아먹지 않았다고 본다.
370만의 민군 죽고 행불 이데올로기 별 뜻 없었던 소시민의 전쟁에서 출발
강우석 | 제규가 찍었으면 아주 살벌한 영화가 됐을 거다.(웃음) 촬영 전 자료조사할 때 강간, 훈련, 사고사, 탈출병 학살 이야기 같은 걸 들으면서 진저리를 쳤고, 얘기 듣다가 그만 하라고 자른 적도 있다. 실제로 들은 대로 찍었으면 ‘18살이상 관람가’이거나 ‘등급 보류’가 나왔을 거다. 제규 같으면 시체 태워서 먹고 하는 것까지 다 찍었을 거다.(웃음) 나는 사실성보다 이야기에 중점을 뒀다. 선과 악, 피와 아의 구별에만 충실하고 과잉된 부분은 배제하려 했다.
좀 더 사실적이냐 아니냐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처음에는 화면에도 신경썼고 기간도 길게 잡았는데 이게 아니다 싶어 그뒤부터 날기 시작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찍은 게 오히려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있다고 본다.
강제규 | <태극기…>의 경우,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극장 나오는 관객 한 분이 우리가 조국 지키기 위해서 빨갱이와 열심히 싸웠는데 그런 부분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하더라. 예상했던 것이긴 한데, 촬영 전에 자료조사 해보니까 370만 민과 군이 사망, 행불됐다. 민간인 사상자가 많았고 전쟁 자체가 민군이 결합된 혼합전 양상이었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 비중을 두지 않던 소시민, 국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의 전쟁이었다는 생각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피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겪고 느낀 전쟁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사상에 경도돼서 의지로 싸운 군인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 진실이라는 측면에 근접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전쟁이미지를 다 지우고 영점에서 출발했다.
관객 1천만명 시대
강우석 | 나는 영화 한편이 동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600만명이라고 봤다. 800만명 넘은 <친구>도 부산 경남지역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은 일종의 이변 같았다. 그래도 <실미도>에 관객 몰리는 것 보면서 1000만명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한번 1000만명이 들면 1000만명은 아무 때나 나올 수 있다. 이전 흥행작들은 300만명까지 논스톱으로 가다가 거기서 멈춰서 500만명까지 한참 걸린다. 지금은 계속 달린다.
이제는 마지노선이 600만명이 아닌 것 같다. 장르 영화는 300만~400만명이 한계다. 그게 더 들 때는 어떤 의미가 붙어서 사회현상이 됐을 때다. <투캅스>를 나는 사회고발영화로 찍은 게 아닌데, 언론이 그렇게 봤다. <실미도>도 할리우드 영화 <록> 같은 거랑 붙어보자고 만들었다.
그런데 자료조사 하다보니까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사회적 사건이나 실화를 다룬 영화는 조심스럽게, 솔직하게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사회고발 안해도 과거의 아팠던 부분 보여주니까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 느끼는 관객의 분노와, 지금은 그래도 낳은 시대에 산다는 안도감 같은 게 생기는 것같다. 찍을 땐 그것까지 예상하지는 못하고 드라마틱한 소재의 경쟁력만 봤을 뿐인데 사회현상이 되니까 나도 헷갈린다.
강제규 | 우리가 격동의 세월을 지나왔는데 선배들의 아픔, 상처, 이런데 대한 사회적 배려장치가 너무 없었다. 그런데 대한 보상심리가 <실미도>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실미도>는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요즘 관객들 취향으로 보면 한계가 있을 거라는 시선이 있었다. 그게 아니었던 거다. 과거의 아픔, 고통에 동참하는 데에 인색했다는 공감이 생긴 거다.
<태극기…> 준비하면서도 반성 많이 했다. 나는 아버지가 6·25 때 군인이었고, 삼촌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져 왔는가. 아마 형도 <실미도> 만들고 고맙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을 거다. 그게 가식적인 말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공감이자 그동안 당신들은 뭐하고 있었냐는 질타일 수도 있다.
너도나도 과거만 얽매일까, 이상한 대작주의 부를까 부담스럽고 염려스럽다
강우석 | 그런데 <실미도>나 <태극기…>를 계기로 후배들이 너도 나도 심각한 과거, 10·26, 5·16 등을 영화소재로 끌어낼까봐 부담스럽다. 벌써 그런 기획에 대한 소문들이 들려오는데, 이 두편이 이상한 대작 지향주의를 불러올까봐 영화적 역기능이 우려된다.
강제규 | 우리 사회는 아직 다양성이 덜 인정되는 구석이 있다. 누가 뭘 잘해서 터지면 다 따라가고 그런 게 문제다. 내가 나중에 또 이런 영화를 찍으면 ‘저 인간은 그냥 저런 거 하는구나’ 하면 되는데 ‘너만 찍냐’ 이러면 곤란하지 않나.(웃음) 나는 1천만명 시대가 소중한 게, 파이가 커지면 그게 동력이 돼 더 다양한 기획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중년을 소재로 한 영화는 위험성이 너무 크지만 30~40대가 준비된 관객이 되면 그런 영화가 나올 거다.
1000만관객 파이 커진만큼 다양한 기획 동력도 세져 30·40대 관객 더 끌어낼거다
강우석 | 제규에게도 이야기했지만 <태극기…>가 크게 터져서 <실미도>를 잊혀지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 1년에 한편씩 꼭 개봉하고 싶다. 앞으로 제작에 관여는 하겠지만 돈은 안 만질 거다. 올해 말엔 <공공의 적> 2편이 나올 거고. 스필버그는 영화마다 수익 2억달러를 넘기면서도 계속 찍는다. 그게 의미가 있지 제임스 카메론처럼 <타이타닉> 하나 찍고 ‘아이 엠 더 킹 오브 더 월드’ 하면서 놀면 뭐하나. 흥행 성적에 신경쓰는 건 딱 어느 선까지만 하고 빨리 새 걸로 넘어가야 한다. 투자, 배급, 제작자에서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격려하고 밀어주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닌가.
강제규 | 형이 주변 감독들 영화하도록 자리 만들고 격려하고 영화 양산하도록 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나는 그걸 못할 것같다. 몇년 동안 비슷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안됐다. 이젠 좀 더 철저하게 감독쪽으로 가려 한다. <쉬리> 찍고 나서 5년만에 새 영화 내놓은 것에 대해 반성 많이 했다. 이건 배신이다(웃음). 아무리 늦어도 2년에 한편씩은 찍어야지. 형처럼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부지런하면 1년에 한편도 되겠지만.
강우석 | 나도 너처럼 잔인하게 찍으려면 2년에 한편이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