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아시아영화연대의 서막을 열다, AFCN 설립준비위원회 회의
2004-02-23
글 : 이혜정
글 : 김수경

케이스1. 영화 <친구>에서 준석과 상택이 재회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고가도로 위에서 달리는 택시를 세우고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준석. “조폭들은 도로교통법이고 뭐고 없구나, 역시 멋져”라고 감정이입을 했다면 섣부른 오산이다. 영화 속에서 교통지옥 부산의 차로를 마비시키며 친구를 반기는 터프가이는 준석이지만 현실에서 그 촬영이 가능하도록 시당국과 시민들을 설득하고 뒷받침한 숨은 노력가는 바로 부산영상위원회(BFC)다.

케이스2. 중국에서 촬영된 <천년호>는 촬영은 저장성에서, 현상은 상하이에서, 통관은 베이징에서 했다. 제작자인 김형준 프로듀서는 네거필름 훼손이 염려되어 하루도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로케이션을 바꾸는 것도 아닌데 왜 필름이 중국 천지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합작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어려움인 이러한 사안도 영상위 혹은 필름커미션(이하 FC)이라고 불리는 단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2월16일부터 3일간 부산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각국 필름커미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Asian Film Commission Network’(이하 AFCN)라는 가칭으로 아시아 필름커미션 연합의 설립준비모임이 최초로 개최되었다. 총 13개의 FC가 모인 이 자리의 준비위원회 회의를 통해 아시아FC네트워크의 방향이 결정된다. 국제 FC기구인 AFCI의 의장 팻 카우프만이 첫 교육섹션을 통해 각국 FC 구성원들에게 강조한 것은 매우 간명하다. FC는 비영리기구이며, 네트워크적 기능이 가장 중시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FC는 현지 제작산업과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제작집단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315개 FC의 국제연합인 AFCI는 새로운 FC 설립을 보조하고 교육하며 기준을 제시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두 번째 교육섹션에서는 25년간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로 74개국을 방문했던 빌 바울링의 아시아 로케이션에 관한 견해를 듣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는 교육섹션에서 로케이션 매니저가 프로페셔널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로케이션이 단순히 지원이나 협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인식을 통해 성립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호주, 미국, 부산의 FC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중국 FC와 환경에 관해서는 약간의 우려를 나타냈다.

준비위원회 회의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FC 담당자와 대표들이 자국의 영화산업을 소개하고 FC의 역할과 현황을 보고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발리는 관광산업과 연계한 활동,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서는 3개 정부기구가 FC의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 베트남은 아직 사전검열이 존재한다거나 일본은 관료제에 의한 엄격한 규제의 장벽이 남아 있다는 점 등 각국 FC의 특성과 어려움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자리였다.

이번 AFCN 준비행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역은 2월17일에 열린 케이스 스터디였다. 그것은 국내에서 해외 합작이나 로케이션을 경험한 PD들과 동일한 경험의 타 아시아 국가의 PD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례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의 부산 로케를 담당했던 시이이 유키코 PD가 말하는 한국 로케의 사례나 가와이 신야 PD가 바라본 에드워드 양의 작업방식 등은 사실적이면서도 향후 AFCN이 공통된 기준을 세워야 할 때 자양분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해외 파트에서 이 부분에 참가한 가와이 신야 PD와 스즈키 요시히로 PD는 올해 <역도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진행을 맡은 오정완 PD가 제기했던 합작의 경우 어느 범위까지 자국영화로 인정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네트워킹이 활성화될수록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FC 관계자는 유로파나 유리마주로 대표되는 유럽의 합작처럼 특별히 국적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라는 개인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AFCN의 기획은 ‘아시아영화’라는 큰 그림을 위한 중요한 스케치다. 향후 아시아FC들의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B스튜디오 내부

아시아 영화산업의 허브'시네포트 부산' 프로젝트

“부산국제영화제의 PPP를 통한 제작투자 영역, 영화제 마켓을 통해 배급영역을 커버한 부산영상산업은 아시아 FC의 연대를 통한 프로덕션 영역을 강화하여 아시아토털필름마켓을 형성할 것이다.” 박광수 부산영상위운영위원장이 밝힌 계획은 이번 AFCN 준비회의와 영화 B스튜디오 구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새로 건립된 B스튜디오는 500평 면적으로 국내 최대규모이다. 부산영상산업 발전계획(일명 시네포트 부산)은 아시아제작네트워킹에 대한 논의가 한국 영화산업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연동한다. 동시에 시네포트 부산으로 명명된 부산지역의 영상산업전략과도 맞물리는 지점이다. 시네포트 부산의 주요계획은 부산국제영화제지원, 영화촬영지구조성, 영상센터 건립, 종합후반작업기지 조성,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 부산 기능강화, 영화영상진흥기금조성 등으로 2008년을 계획의 완성시기로 잡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현재 무비시티를 건설하고 있는 홍콩과 경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영화계가 만드는 새로운 아시아형 퓨전

영화 <역도산>을 말하다

대담 참석자

PD 김선아, 라인 PD 스즈키 요시히로 / 진행 김수경·통역 이은경

<역도산>

제작 차승재, 노종윤, 가와이 신야

프로듀서 우메가와(스튜디오3), 김선아

라인프로듀서 스즈키 요시히로(어뮤즈엔터테인먼트)

감독 송해성 출연 설경구 촬영 김형구

제작비 60억원(예상)

계획 촬영 3개월 예정 4월 중순 크랭크인

7월 말 촬영 만료

후반작업 4개월 뒤 겨울 개봉예정

한국인은 재일동포로, 일본인은 순혈 일본인으로 기억하는 대중영웅. <역도산>이 한·일 합작으로 제작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AFCN에서 만난 <역도산>의 양국 프로듀서와 나눈 이야기.

<역도산> 프로젝트의 계기는.

김선아 <봄날은 간다>를 하기 전에 홍콩, 한국, 일본 3개국 합작 논의가 있었다. 그것을 진행하던 중에 일본쪽이 사정이 생겨 중도하차했다. 일본쪽을 맡은 사람이 가와이 신야 PD였는데 프로젝트의 중도하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채널을 연결해준 곳이 쇼치쿠였다. 그래서 쇼치쿠와 진가신의 어플로즈드 픽처가 <봄날은 간다>의 투자에 참여했다. 이후 가와이 신야는 우리와 별개로 일본에서 <역도산>을 구상했다. 신기하게도 우리쪽도 송해성 감독의 제안으로 <역도산>을 기획했다. 그러던 중에 가와이 신야 PD와 차 대표가 만나게 되어 그럼 <역도산>을 같이 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러 차례 해외 작업의 경험이 있는 걸로 아는데 한국과의 작업이 갖는 장점이 있다면.

스즈키 요시히로 아프리카에도 갔었다. 해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문화적인 견해 차이다. 그런 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일정 부분 문화적 동질성이 있고, 타 국가에 비해 전문용어의 유사함 등으로 확보되는 작업의 용이함이 있을 것 같다. 해외 작업의 가장 큰 난점은 시간관념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그들은 해가 지면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김선아 차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영화작업에 대한 명확한 태도는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서로가 너무 닮았다는 점을 과신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스즈키 요시히로 PD가 생각하는 역도산.

스즈키 요시히로 영웅, 아버지 세대의 사람 정도다. 마치 야구선수 나가시마 같은. 역도산이 한국인인 줄 몰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걸 알고는 가끔 역도산 이야기가 나오면 과민한 반응을 보이던 한국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영화가 그리려는 역도산은.

김선아 39살에 죽음을 맞이한 전투적 삶과 그 이면. 우리 시나리오 표지를 보면 가운을 입은 역도산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역도산이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영화화되지 않은 이유라면.

스즈키 요시히로 일본에서 설경구처럼 그런 역할을 해낼 배우가 없었다거나 스포츠영화의 어려움과 같은 제작환경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스템이나 여러 가지의 제약이 현재의 일본 영화계를 위축시키고 있다. TV물이나 TV잡지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화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원인일 것이다.

AFCN과 같은 조직의 발생이 줄 수 있는 효과라면.

그런 것을 통해 한국에서 일본 프로덕션들이 작업을 자주 하면, 일본의 제작환경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프로덕션 작업이 줄어들면 일본도 구태의연할 수는 없을 테니까.

스탭 구성이 가장 중요한 화두일 것 같다.

스즈키 요시히로 50 대 50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감독이나 주요 파트는 한국이 담당할 것이다.

김선아 시스템의 차이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제작시스템 미술, 동시녹음, 감독, 분장, 미용, 의상은 현지화 컨셉에 맞게 일본에서 담당한다. 언어와 설경구를 제외한 배우도 90% 이상 일본이 맡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의미는 국적을 불문하고 롤이나 작업의 필요에 따라 팀을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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