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블록버스터’라고 자기 정리를 하고 있는 영화다. 규모도 그렇고 이야기의 대중적 설득력도 그렇거니와 영화의 마름새도 그렇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게 아니라 한마디로 작가가 소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는 어떤 시스템의 결과이다.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 고용되어 하나의 나사못으로 기능한다. 이 시스템의 목표는 역시 이윤이다.
이 블록버스터영화의 이념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여전히 역사적으로 해소되거나 극복되지 않은 문제를 현재진행형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우리는, 아픈 사람들이다. 통곡할 정도로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상처의 치유가 역사적 과제인 사람들이다. 남한 땅에서 그 과제를 ‘주적 개념’과 떨어뜨려 이야기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것을 들춰내어 이렇게라도 이야기하는 데만 5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아도 정작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다. 대중성이란 그런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가지는 설득력의 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큰 줄기 하나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 ‘공공연한’ 블록버스터영화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이동준. 그는 한국 영화음악의 팬이라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음악가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O.S.T에 있는 대로 ‘www.dongjune.com’을 쳐서 들어가보면 그간의 그의 활약상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사이트에는 “영화가 육체라면 음악은 영혼”이라는 말이 사이트 주소와 나란히 써 있다. 이동준은 이미 <은행나무 침대> 때부터 강제규 감독과 호흡을 같이 했고 <쉬리>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말하자면 그의 영화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음악은 ‘블록버스터’라는 말에 그리 불편하지 않게 연결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국립 오페라단 합창단이 노래했다. 영화 사운드의 볼륨만으로 본다면, 대사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효과음들이며 음악의 레벨은 그 다음이다. 어느 영화나 그렇지만 이 영화는 특히 그 차이가 귀에 들어온다. 음악은 저 멀리서,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앞서가지 않기 위해 많이 신중해하면서 울려퍼진다. 긴박하고 강렬한 리듬의 사용을 절제하고 저음의 스트링이 뒤에 깔리는 경우가 많다. 이 선택은 그의 풍부한 영화음악 경험을 말해준다. 총소리, 대포소리, 살 떨어져나가는 효과음 등이 모두 강한 리듬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에서 구태여 리듬을 보탤 필요가 없다. 대신 스네어 드럼과 팀파니가 이따금씩 두드리는 절제된 리듬이 운명의 알 길 없는 꼬임들을 예고한다. 그러나 멜로디는 희망적이고 심플하다. 인트로를 들어봐도, 구슬픈 단조가 아닌 장조의 화음에 서사시적인 느낌의 합창이 장엄하게 흐른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