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깊이는 없었던 덴젤 워싱턴의 전작들에 비하면 <아웃 오브 타임>은 흥미로운 모티브를 품고 있다. 자기도 모르고 한 행위가 덫이 되어 돌아오는 운명적 딜레마는, 형사이자 범인인 주인공의 이중성과 맞물려 개성있는 존재론적 스릴러 한편을 낳을 수도 있었다. 그 과정은 법의 수호자인 남성이 팜므파탈이 사라진 빈 구멍 속으로 빠져드는 현기증의 나선회로일 수도 있었던 거다. 하지만 여자를 찾던 중의 살인 누명이나 최후의 반전 같은 설정은 감독의 전작 <블루 데빌>이나 <하이 크라임>이 써먹은 수준마저 밑돈다. 칼 프랭클린 감독은 앨프리드 히치콕도 크리스토퍼 놀란도 아닌 셈이다.
남은 건 역시 덴젤 워싱턴뿐인데, 아무리 명배우라도 감독하기 나름인 법. 코믹, 액션, 스릴, 어디에도 방점을 찍지 못한 영화를 배우 혼자 건사하긴 역부족이다. 플로리다의 석양과 인물들의 피부가 구릿빛 열정으로 끈적대는데도 섹스 어필은 심심할 정도다. 버디무비라기도 반전(反轉)영화라기도 어정쩡할 뿐인 <아웃 오브 타임>은 대중상업영화의 소임에서마저 ‘아웃 오브’해 있다. 대신 경찰은 꼭 섹스하려는 찰나 호출되고, 그렇게 지연된 쾌락은 결말에서 보상되며, 클라이맥스에선 총 맞아 죽기 직전 동료가 간발의 차이로 범인을 먼저 쏜다는 따위의 온갖 장르적 클리셰들만 맥없이 이어질 따름인데, 이 점에서만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