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포 선셋>의 감독과 줄리 델피, 에단 호크를 만나다
2004-03-1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9년 전에 기획된 9년 뒤의 로맨스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비포 선셋>의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주연배우 에단 호크, 줄리 델피를 만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속편을 들고 베를린영화제를 찾았다. 그의 신작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20대 젊은이 제시와 셀린느가 9년이 지나 다시 파리에서 만나 하루낮을 함께하는 영화. 삼십대에 이른 제시와 셀린느는 여전히 솔직하고 재기 어린 대화를 나누지만, 그 틈새에는 세월이 가져다준 냉소와 회의가 묻어 있어 쓸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이좋게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선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에단 호크, 줄리 델피는 감독과 배우라기보다 험난한 20대를 손잡고 견뎌온 친구들처럼 보였고, 쏟아지는 환호와 휘파람과 박수에 들떠 있었다. 1995년 <비포 선라이즈>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최우수 감독상 부문을 수상한 링클레이터는 다시 베를린을 찾은 감회를 묻자 “어제 베를린에 도착해 자동차를 타고 호텔로 간 다음 곧바로 온 곳이 이 기자회견장이다. 자동차 창문으로 내다보기엔 좋아 보이더라”는 가벼운 농담으로 화답했다.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9년이나 지나 속편을 만든 까닭은 무엇인가. 혹시 또다시 9년이 지나면 <비포 더 돈> 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웃음)

리처드 링클레이터: 속편을 만드는 데에는 항상 문제가 따른다. 제작비를 마련해야 하고, 전편이 주는 부담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매우 사적인 영화였다. 나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비포 선셋>을 만들었다.

줄리 델피: 속편은 보통 전편과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비포 선셋>은 단순한 속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같은 인물이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뭐랄까,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되는 이야기를.

당신 셋은 몇년 동안 이 영화를 염두에 두어왔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비포 선셋>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이 영화의 대사는 매우 사실적인데, 어느 정도가 즉흥연기였는지. 또 미리 써둔 대사와 즉흥적인 대사는 어떤 식으로 조율했는가.

줄리 델피: <비포 선셋>에서 내가 말하는 대사는 대부분 즉흥적으로 나왔지만, 충분한 적용을 거쳤기 때문에 사실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시와 셀린느라면 그 순간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라는. <비포 선셋>의 모든 대사와 단어는 제시와 셀린느가 영화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말하고 반응했을 법한 것들이다.

에단 호크: 내게 <비포 선셋>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행동해야 했으므로. 이 영화는 매우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그것이 그대로 시나리오가 되었다. 무언가 떠오르면 바로 쓰는 방식으로. 그 때문에 이 영화에는 드라마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내가 고민해야 했던 건 제시와 셀린느라면 이 순간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과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이 거의 일치한다. 완성되어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고, 그때그때 현실에 적용해 즉흥적으로 연기해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내 대사는 매우 개인적이었다. 전형적인 배우가 하는 연기, 카메라 뒤에 무언가를 숨기는 연기는 하지 않았다. 그건 보기보다 훨씬 어려웠다.

어떻게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가.

리처드 링클레이터: <비포 선셋>을 만들 때까지는 뭔가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포 선라이즈>만으로는 무언가를 남겨둔 것 같은 그런 느낌. 처음 속편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비포 선라이즈>를 찍으면서 이미 시작됐다. 우리는 모두 매우 젊었고, <비포 선라이즈> 촬영은 대단히 멋진 경험이었다. 우리는 그 영화에 단순한 작업 이상의 감정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만일 두 번째 영화를 만든다면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나와 줄리와 에단은 <비포 선라이즈>를 찍는 동안 날마다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농담처럼 속편을 찍는다면 좋을 텐데라고 수다를 떨곤 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현실을 염두에 둔 대화였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뿐이었다.

에단 호크: 나와 줄리는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2001년에 만든 <웨이킹 라이프>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 건 그 무렵이었다. 뭐 할 수 있겠지라고, 얘기하다 보니 진짜 속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 해야만 해,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몇년이나 지난 뒤에 애착을 가졌던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 것 아닌가. 물론 속편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웨이킹 라이프> 이전부터 했었고. 우리 세 사람은 더 싸고 단순한 방법으로 속편을 만들자고 말해왔다.

줄리 델피: 한번 시작한 이야기를 끝마친다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다. 나는 <비포 선라이즈>에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마음을 주었다. 게다가 나는 다른 주제로 파고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지금 삼십대고 <비포 선라이즈>와는 다른 삶의 단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는 사랑을 말하는 영화인데, 그 무렵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웨이킹 라이프> <테이프>처럼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도 마찬가지다. 그런 영화를 찍으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비포 선셋>은 제작비와 배우의 스케줄 때문에 15일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대부분이 야외 촬영이어서 햇빛이 있는 동안만 찍을 수 있었으므로, 15일 동안에도 하루에 몇 시간만 촬영이 가능했다. 그래서 <비포 선셋>은 대부분 스테디캠을 사용한 롱테이크와 롱숏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편집분도 있었다. 점프컷을 사용하기도 했고. 질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내 영화는 18시간이나 24시간 정도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고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포 선셋>은 엄격하게 말해서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나는 관객이 제시와 셀린느의 느낌을 그대로 느끼기를 바랐다. 오래전 로맨틱한 하룻밤을 보낸 남자와 여자가 9년 만에 만났는데, 그들은 어떻게 관계를 회복해갈까. 그들 사이에 놓인 에너지와 그들이 느끼는 행복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했다.

에단 호크에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비포 선셋>을 찍는 동안 당신과 우마 서먼의 불화가 타블로이드 신문을 장식했다(에단 호크는 지난해 가을 한 모델과의 불륜으로 아내 우마 서먼과 불화를 겪었고, 얼마 전에는 이혼을 선언하기도 했다).

에단 호크: 배우라면 어쩔 수 없이 치르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 무렵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내 삶을 뒤흔들었지만, 배우는 내 직업이다. 어쨌든 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보다는 로맨스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시나리오도 직접 썼는데, 당신들 자신은 로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단 호크: 로맨틱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웃음)

줄리 델피: 몇번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같은 영화에는 로맨스에 대한 개인적인 시선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비포 선라이즈>를 찍을 때 나는 20대였고, 세상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로맨틱했던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반드시 로맨스를 회의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현실적이 되었다. 이젠 순수한 로맨티시즘보다는 관계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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