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인물인 프랭크 T. 홉킨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히달고>는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고전적인 액션어드벤처영화에 향수를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소박한’ 영화 앞에서 기꺼이 무장해제당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엄청난 상금을 얻기 위해 살해와 모략을 서슴지 않는 무시무시한 경주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내적 투쟁을 극복함으로써 동시에 외적인 난관까지 헤쳐가는 과묵한 영웅 프랭크는 고전 서부극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보안관을 연상시킨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류의 영화들에서 그려지는 부조리하게 재해석된 현대판 영웅들과는 완전히 다른, 헨리 폰다나 그레고리 펙과도 같은 스트레이트한 이상적 휴머니즘의 공고한 구축 앞에서 다시 한번, 판타지의 매혹에 기꺼이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한편 그토록 철저한 판타지의 세계로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셸리 존슨의 유려한 카메라에 담긴 기막힌 풍광들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후 처음 보는 듯한 사막의 스펙터클은 컴퓨터그래픽과 함께 눈을 사로잡는다. 장대한 해와 달,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는 모래사막, 엑조틱한 아름다움 너머로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집들, 유혹적인 신기루, 바싹 마른 입술과 윤기 흐르는 말갈기….
만약 액션어드벤처의 장르적 특성에 별 관심이 없는 이라면 <히달고>는 시대착오적인 따분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운디드니 학살사건을 삽입하여 프랭크의 정체성에 과도하지만 얄팍한 의미를 부여한다든지, 아무리 위급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용기를 잃지 않는 프랭크와 히달고의 전형적인 영웅 탄생 패턴이라든지, 대부분 예측할 수 있는 단순한 기승전결이라든지…. 이런 설정들을 보고 냉정하게 잘라 말하자면 익숙한 영웅의 숭고미가 진부함으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오락영화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기에 <히달고>는 과도하게 위엄을 갖추고 싶어하고, 새로운 서부극의 본보기가 되기에는 섬세한 통찰력을 결여하고 있다. 역시 딜레마의 핵심은 엄청난 제작비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