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5일 개봉을 앞두고 <범죄의 재구성>(사진)이 모방시비에 휘말렸다고 한다. 소설가 박청호씨가 쌍둥이인 주인공을 내세운 것, 한국은행을 턴다는 설정 등이 4년전에 자신이 쓴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를 차용한 것이라며 법원에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는 것이다. 이에 제작사인 싸이더스 쪽도 “1996년 경남 구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은행 사기사건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며 박씨를 상대로 강경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전엔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의 시나리오 또한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었다.
최근 영화계에 부쩍 송사가 많아진 느낌이다. 영화산업의 거래 관행이 합리화되고, 영화계 안팎의 종사자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이전보다 뚜렷하게 자각하게 된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법적 다툼이 많아지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것은 없다. 하지만 재판정까지 끌고가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인식은 확실히 좀 문제인 것 같다. 특히 개봉일까지 가슴을 졸여야 하는 제작사의 입장에서, 개봉 전에 송사에 휘말리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소송에서)이겨도 (실질적인 손해 때문에)이긴 것이 아니다”라는 한 제작자의 푸념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물론 상대방 역시 좋아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사를 상대로 한 소송의 대부분은 개인이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래저래 감내해야 하는 금전적, 육체적, 감정적 소비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굳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별다른 분쟁 조절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개인들이건 영화사들이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곧바로 소송 다툼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상영금지 가처분’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까.
이런 까닭에 영화계 일각에서는 영화계 내부의 자율적인 분쟁 조절 기구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리 있는 제안이다. 누군들 법정까지 가고 싶어서 가겠는가. 영화계와 문화예술계, 법조계 안팎의 존경받는 분들이 이러한 조정 기구에 참여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다면 소송에 소요되는 많은 시간과 금전적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특히 영화산업 내부의 많은 다툼이 단순한 법적 다툼이라기보다는 영화의 표절이나 창작성과 관련한 고도의 예술적 판단을 요하는 사항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료 예술가나 영화를 이해하는 법조인의 판단이 판사의 판단보다 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