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영화] <마지막 늑대>
2004-03-26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좌충우돌 투갑스 “파출소를 지켜라”

최 형사(양동근)가 뛴다. 죽어라고 달아나는 범인을 죽어라고 쫓아간다. <와일드 카드>에서도 그랬지만 양동근의 뛰는 폼과 표정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이 악물고 뛰는 그 에너지는 정의감이나 투철한 직업의식의 발로라기보다 어떤 반항같다. “내가 왜 이 X같은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밖에 할 게 없어, 젠장!”하고 뇌까리는 것같다. 자신과 일, 세상에 대한 냉소를 자기 몸에 대한 학대로 푸는 듯한 느낌.

사건이 지겨운 양동근, 시골이 지겨운 황정민,,탄탄한 대비 강요없는 웃음

뛰다가 범인이 차를 타고 달아나니까 차의 창문을 붙잡고 매달린다. 몸이 질질 끌려가는 그 와중에 얼굴에 햇볕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 햇살…” 하는 그의 독백은 죽음의 공포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가까스로 살아나 다시 쫓다가 폐쇄된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한 겨울에 삼일동안 갇혀 있으면서 엘리베이터 벽에 붙은 신문의 여행기사를 본다. 강원도 정선군 한 마을의 숲 사진. “저기 가고 싶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결심한다. “나 일 안 할래!”

<마지막 늑대>는 바쁘고 여차하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야 하는 서울이, 서울의 경찰 일이 싫어서 사건 없는 시골 파출소로 전근 온 최 형사와, 시골이 지겨워 죽을 것 같은 강원도 토박이 고 순경(황정민), 둘이 엮어가는 코미디이다. 도입부의 숨가쁜 추격전에서 그 일을 치르는 이의 지옥같은 심경을 간결하고 맛깔나게 잡아채더니, 한가하기 그지없는 산골 마을로 옮겨와서도 리듬감을 살리며 드라마를 곧잘 이어간다. 사건이 없으니 고 순경이 하는 일은 소 대신 멍에를 지고서 밭을 간다. 밭 주인이 말한다. “이거 소가 해도 되는데.” “소도 쉬어야지요, 저 밑에 밭도 갈까요” 고 순경은 혼자 거울 보고 자기 신세를 한탄한다. “내가 소라 한창 나이에 이게 뭐라.” 와중에 서울서 온 최 형사는 숲에 돗자리 깔고 자고, 깨어나면 <동물의 왕국> 촬영팀처럼 동물들을 관찰한다.

정작 사건은, 경찰 인력 부족으로 사건없는 마을 파출소를 없애고 그 인력을 서울로 보낸다는 경찰청의 발표다. 고 순경은 서울 가게됐다고 들뜨지만, 최 형사는 똥줄이 탄다. 어떻게는 마을에 사건을 만들려 애쓰는 최 형사는 고 순경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런저런 계산이 맞물려 둘이 한편이 됐다가 또 갈리고 하는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경찰 코미디 장르에 충실하게 흘러간다.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고, 전반부보다 기발함이 처지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안정감있게 버텨가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한다.

<마지막 늑대>는, 아이러니컬한 설정은 있으되 그 안에 내용을 못 채워서 안달하는 요즘 한국의 대다수 코미디 영화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를 잘 만들어가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설정이 관객의 어떤 정서를 건드려야 하는 건지를 잘 안다. 대도시와 시골, 일하기 싫어하는 심정과 일하고 싶어 안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둘 다 공감이 가게 잘 대비시켜서 영화 안에 녹여넣는다. 또 하나. 최 형사는 고 순경보다 계급이 높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찰 경력도 짧다. 최 형사는 고 순경에게 반말과 존대말을 섞어 쓰고, 애매할 땐 말 꼬리를 흐린다. 호칭도 ‘고 순경’과 ‘고 선배’를 왔다갔다 한다. 이게 둘 사이의 관계에 사실감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킨다. 별 것 아닌 것같지만 다른 한국 영화들에서 보기 힘든 정치함이다. 구자홍 감독 데뷔작. 4월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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