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알아보거나, 그 작가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등으로 유명해진 찰리 카우프만(사진)은 이같은 희귀(?) 작가 중 하나. 특히 그의 새 작품 <순수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을 손꼽아 기다렸던 뉴욕의 영화팬들은 지난 3월19일부터 이 영화의 개봉관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호평 속에 개봉한 작품은 평론 전문 웹사이트 ‘라튼토마토닷컴’에서 전체 리뷰 평균 92%를 기록했다.
제목이 너무 길어 관객이나 극장 직원들이 <영원한 햇빛>이라고 맘대로(?) 줄여 부르는 이 영화에서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이 남자친구를 기억 속에서 모두 삭제시키는 의학 시술을 받자, 남자친구인 조엘(짐 캐리) 역시 홧김에 같은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하나둘 사라지는 시술과정을 머릿속에서 실제 경험하게 된 조엘은 그녀와의 나쁜 기억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까지 삭제되기 시작하자,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살리려고 기억 속의 그녀와 함께 필사적으로 도망다닌다.
<영원한 햇빛>에는 카우프만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 재치와 유머,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짐 캐리라는 스타가 주연이지만, 아무도 이 영화를 ‘짐 캐리 영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팬들은 단순히 ‘카우프만 영화’로 지칭한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 <휴먼 네이처>로 데뷔한 미셸 공드리가 연출을 맡아, 조엘의 머릿속에서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을 카우프만의 상상력에 맞먹는 시각적인 장면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작품에는 짐 캐리 외에도 늘 다부진 연기력을 과시해온 케이트 윈슬럿이 기분에 따라 머리 색깔을 바꾸는 천진난만한 클레멘타인으로 나온다. 이외에도 엘리야 우드와 마크 러팔로가 주인공의 기억을 부분 삭제해주는 기술자들로, 커스틴 던스트는 병원 리셉셔니스트로, 톰 윌킨슨은 도덕관념이 결여된 담당 의사로 출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연기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