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오시마 나기사 감독 <고하토> 4년만에 한국개봉
2004-04-13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일본의 세계적인 거장 오시마 나기사(72)가 1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2000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큰 관심을 모았던 〈고하토〉가 23일 국내개봉한다. 오시마 감독은 제작 직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휠체어에 의지해 이 영화를 완성했다. 시바 료타로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고하토〉는 동성애를 소재로 몰락해 가는 사무라이 세계의 분열과 자멸을 그리고 있다.

너는 왜 무사답지 않게 아름다운거니

서구화의 물결이 구체제를 위협하던 18세기 중반의 교토, 사무라이 조직 ‘신선조’의 새 무사를 뽑는 선발대회장에 한 명의 미소년이 나타난다. 탁월한 검술 실력을 가진 열여덟 살의 가노(마쓰다 류헤이)가 새로 신선조에 들어오자 이 조직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일본의 전통인형처럼 흰 피부와 길고 가느다란 눈매, 육감적인 입술선에 다른 무사처럼 아직 머리도 올리지 않고 아이처럼 앞머리를 가지런히 내린 가노의 모습은 함께 들어온 동기 다시로(아사노 다다노부)의 노골적인 구애뿐 아니라 완고한 조직의 우두머리인 곤도(최양일)와 히지카타(기타노 다케시)에게까지 묘한 성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탈영뿐 아니라 동료에게 돈을 빌리는 일조차 처형받을 만한 죄목이 되는 엄격한 사무라이 집단에서 가노는 매우 예외적인 존재다. 다시라의 구애가 두 사람의 연애관계로 공식화되고 가노에게 여자를 가르쳐주려던 감찰관까지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이 되지만 그 누구도 가노를 처벌하거나 조직에서 퇴출시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가노는 다른 동료에게 몸을 내주고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눈길들을 감지하지만 부정도 긍정도 아닌 태도로 일관한다.

거장감독 14년만의 작품

〈고하토〉에서 동성애는 하나의 관계라기보다 체제가 금지하는 열정과 욕망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노는 동료들에게 성적 파트너로 대해지기보다 거부할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아름다움은 오시마 감독과 함께 일본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이 그의 영화들에서 설파한 것처럼 그 자체로 반체제적이다. 체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도발을 이끌어내는 가노의 아름다움은 조직의 위협이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속성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상대로 하여금 거부감 이전에 매혹으로 다가오고, 눈에 보이는 파멸의 위험마저도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히지카타만이 이 아름다움이 가진 위험을 알 듯 모를 듯 감지하지만 그 역시 악의 꽃을 꺾기에는 무기력하다.

칸영화제는 “실망”

〈고하토〉는 거장의 오랜 침묵에 대한 기대를 뒤집을 만한 문제작은 아니다. 칸 영화제에서 ‘거장의 쇠락’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교한 미장센과 가노와 다시로가 싸우는 마지막 장면의 몽환적인 풍경, 히지카타가 마지막에 단칼로 만개한 벚꽃나무를 잘라내는 모습의 아찔한 아름다움 등이 매우 탐미적이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다. 배우 역할로 이 영화를 통해 노감독에게 헌사한 기타노 다케시와 최양일 감독이 출연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시마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던 유머감각이 녹아 있는 것도 〈고하토〉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