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평론가 허문영
2004-04-13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교회에 걸린 십자가상, 혹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의 경건한 이미지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끝까지 보는 것조차 힘겨운, 고통스런 각성제다. 예수의 육신이 처참하게 고문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거의 해부학적 클로즈업으로 묘사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신의 아들이되 쇠꼬챙이를 이길 수 없는 피와 살을 지녔으며, 죽음에의 예감이 불러오는 불안과 번민을 피할 수 없으며, 한 어머니의 사랑스런 아들이었던 ‘인간’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에 관한 영화다.

그 잔혹하고 집요한 묘사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불편하거나 충격적이거나 불쾌할 수도 있을 이 영화가 그래도 슬프다면 그것은 아들의 육체가 누더기처럼 찢겨지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성모의 울부짖음 안에 있을 것이다. “내 살에서 나온 살이여, 나도 함께 죽게 해다오.”

실제로 그랬을까, 라는 질문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정혁현 목사는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수난 설화 중에서 사실로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빌라도 총독에 의해, 아마도 유월절 축제와 관련되어 십자가형으로 처해졌다’는 정도다”라고 썼다(<필름2.0>, 2004. 4. 6).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멜 깁슨이라는 한 미국인 감독이 예수의 죽음에 관해 제출한 하나의 해석이며 견해다.

할리우드 남성영웅담의 변종, 나는 이 영화가 무섭다

멜 깁슨은 실은 해석하지 않는다. 목회 장면들이 가끔 삽입되지만 끔찍한 고문 장면들이 거의 전부인 이 영화의 서사는 어떤 종교적 질문도 시도하지 않는다. 예수의 육체적 고통을 가능한 한 생생하고 과장되게 재연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다. 멜 깁슨의 관심사는 서사가 아니라 감각이며, 영성이 아닌 육체다. 예수의 고통을 관객에게 전이하기 위해 예수의 시점 숏을 사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비기독교도에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얼핏 예수의 초인적인 맷집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그는 사람을 두 번 죽일 만한 고문을 당하고도 실신조차 하지 않고 거대한 십자가를 운반한다. 여기서 예수는 영적 영웅이 아니라, 육체적 영웅이다.

이 영화가 영성 혹은 신성에 다가간 거의 유일한 장면이 예수의 죽음 직후의 하느님의 시점 숏이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던 시야가 점차 흐려지다가 일순간 눈물이 카메라의 시선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져 골고다 언덕 일대에 지진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조차 신은 눈물을 떨구며 분노하는 인격적 주체일 뿐이다. 여호와의 시선을 카메라의 시선, 즉 감독의 시선으로 전유하는 이 불경한 장면(이 장면의 신성 모독을 기독교단에서 왜 지적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에서 멜 깁슨은 자신의 유아적인 종교관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신은 그에게 우월하지만 또다른 인간적 자아일 뿐이다.

모든 면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왕중왕>을 비롯한 할리우드 고전기의 성서 대작의 후예라기보다 1980년대 할리우드를 지배한 남성영웅담의 변종에 가깝다. 수잔 제포드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드 바디(hard body) 예수다. 저서 <하드 바디>에서 제포드는 “성병, 부도덕성, 불법 화학품, 게으름, 위험에 빠진 태아를 담고 있는 잘못된 몸”인 소프트 바디(여성, 유색인)에 대항하는 “힘, 노동, 결단력, 충성심, 용기를 감싸고 있는 표준적인 몸”인 하드 바디(남성, 백인)라는 개념으로 레이건 시대 할리우드의 남성성을 분석했다. 멜 깁슨은 <람보>, <록키>, <다이하드>와 함께 대표적인 하드 바디 영화로 꼽히는 <리쎌 웨폰> 시리즈의 영웅 릭스 형사였으며 그 캐릭터를 전승한 <브레이브 하트>를 연출한 인물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끔찍하게 도륙당하는 하드 바디의 이야기다. 80년대의 하드 바디가 물러간 뒤 소프트 바디에 가까운 이종 영웅들(<엑스맨>, <스파이더 맨>, <헐크>의 돌연변이들,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이 환대받고 있을 즈음, 승리하는 전통적인 남성 영웅이 아닌, 견디기 힘들 만큼 피학적인 모습으로 하드 바디가 재등장한 것이다. 신자에게 이 영화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고통을 상기함으로써, 신앙심을 굳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비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의 고통과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무섭다. 예수는 처참한 형상으로 죽어가면서 “저들을 용서하옵소서”라고 말했지만, 영화 속의 하느님은 지진을 일으킨다. 그것은 자신의 도시가 상처입은 뒤, 두 이교도 국가를 초토화한 일부 미국인들의 여전히 삭지 않은 증오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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