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원더풀 <스캔들…>, 뷰티풀 <봄 여름…>!
2004-04-14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제33회 뉴디렉터스영화제에 초대된 이재용-김기덕 감독, 미국 아트영화계에 등단

지금 뉴욕에서는 한국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링컨센터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공동주관한 영화제인 제33회 뉴디렉터스/뉴필름스 시리즈(3월24일∼4월4일)에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상영됐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둔 것은 물론 배급사들로부터도 과거 한국영화들과는 다른 적극적인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이번 행사가 큰 의미를 갖게 됐다. 특히 이번 영화제 뒤 4월2일부터 뉴욕과 LA 개봉에 들어간 <봄, 여름…>은 대부분의 평론가들로부터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두고 있다.

뉴디렉터스/뉴필름 시리즈는 신인감독들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좋은 창구로, 작품 상영은 물론 감독과 관객 사이에 질의 응답시간을 마련해 영화학도는 물론 일반 영화팬에게도 인기있는 행사다. 이번 영화제에는 김 감독과 이 감독이 직접 참석,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링컨센터 월터리드 시어터에서 상영된 <봄 여름…>은 김 감독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3월31일 2회 상영이 모두 매진됐다. 링컨센터 앨리스 털리홀에서 소개된 <스캔들…>의 경우 비교적 관객이 몰리지 않는 월요일에 첫 상영이 편성됐음에도 불구하고 800여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 등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캔들…>을 관람한 관객은 이 감독에게 “영화가 너무 아름답다”는 인사로 매번 질문을 시작했다. 이중 한 관객은 “특정영화나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이 감독은 “특정 작품이나 감독이 아니라 지금까지 봐왔던 많은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많은 여행을 하면서 받은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관객은 <스캔들…>에 대한 한국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봄 여름…> 관객은 과거 김 감독의 작품과 이번 작품이 서로 크게 다른 느낌을 준다며, “혹시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이번 영화가 과거의 영화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며 “늘 인간의 삶이 잔인하다는 것을 소재로 다루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장면을 스크린에서 직접 보여주지 않았을 따름”이라고 답변했다.

<뉴욕타임즈>, <스캔들…> 호평으로 관객 불러

이 감독의 <스캔들…>은 아직 정식으로 미주 배급사가 없기 때문에 매년 이 영화제의 모든 영화를 리뷰하는 <뉴욕타임스>만이 평론기사를 썼다. <뉴욕타임스>의 리뷰는 저예산 독립영화나 외국영화들에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일부 경우에는 영화 개봉시 흥행은 물론 각종 권위있는 영화제의 후보에 오르는 데도 큰 입김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리뷰는 영화제 당시 프린트된 평론기사를 정식 개봉 때에도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스캔들…> 리뷰를 쓴 <뉴욕타임스> 평론가 엘비스 미첼은 성적인 정복을 잔인하리만치 잘 다룬 이 작품이 크리스토퍼 햄튼의 버전 <위험한 정사>의 구상 메커니즘을 사용했다며, 여기에 18세기 조선시대의 사회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압박을 가미해 재편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작품화된 이야기에 이 감독의 또 다른 버전을 보여준 것을 호평했다. 이번 <스캔들…>의 2회 상영회는 <뉴욕타임스> 리뷰로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지난 2002년 배급사 엠파이어픽처스를 통해 <섬>으로 미국에 첫 인사를 했던 김기덕 감독은 지금까지 낚싯바늘의 독특한 사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러나 이번 <봄 여름…>을 통해 또 다른 면모를 선보여 평론가들의 연이은 호평을 받고 있다. 평론 전문 웹사이트 ‘라튼 토마토 닷 컴’(www.rottentomatoes.com)에 따르면 4월6일 현재 접수된 총 20개의 리뷰 모두가 호평이어서, 전체 리뷰 평균이 100%를 기록했다. 이중에는 <뉴욕타임스>는 물론 <빌리지 보이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뉴욕 데일리 뉴스> <뉴욕 포스트> <타임 아웃 뉴욕> 등 대표적인 미디어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의 케네스 투란은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명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평했고, <뉴욕타임스>의 A. O. 스콧은 “이 섬세한 작품에서 김기덕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정수를 분리시켰고, 놀랍게도 이와 함께 인간 경험의 영역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뉴욕 매거진>은 “감상적이진 않지만 욕망과 노화에 대한 강렬한 일깨움을 준다”고 했고, <뉴욕 포스트>의 V. A. 뮤제토는 “종반에는, 스크린에서나 관객 모두에서 내적인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썼다. 이외에도 <할리우드 리포터>의 커크 허니컷은 “소재와 리듬, 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컨트롤을 보여준다”고 했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오언 클리버맨은 “이 영화의 업적은 관객이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어렴풋이나마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희망과 파괴, 고뇌, 희열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영화 섹션의 첫 페이지 전면을 할애한 <타임 아웃 뉴욕>의 마이크 드안젤로는 “피의 남작에서 선 매스터로”(from blood baron to Zen master)라는 제목으로 김 감독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 리뷰를 다뤘다. 평론가들은 <봄 여름…>을 현재 개봉 중인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마틴 스코시즈의 <쿤둔> 등에 비교하면서, 이들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인간 본성 속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교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또 4월2일 개봉한 <봄 여름…>은 뉴욕과 LA 6개 극장에서 개봉해 4만2561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는 4월2∼4일 주말 흥행 순위로 볼 때 55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스크린당 평균 수익으로 보면 7093달러를 기록, 최근 개봉된 <도그빌>(7813달러)과 흥행 1위를 차지한 <헬보이>(7652달러), <좋은 여행>(7608달러)에 이어 4위를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뉴욕의 대표적인 독립영화 극장 안젤리카 필름센터와 링컨 플라자 시어터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9일에는 LA 인근 지역에서 확장 상영되고 16일에는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포틀랜드에서 개봉되며, 23일 댄버, 30일 댈러스, 디트로이트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5월7일에는 시카고와 뉴헤이븐 커네디컷, 세인트 루이스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개인적인 스케줄 때문이 이번 뉴욕 방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는 이재용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간다”며 “영화 내용이 외국에서 너무 잘 알려진 내용이라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많이 들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반응이 상당히 좋아 놀랐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의 리뷰 효과가 이렇게 큰지 몰랐었다”는 이 감독은 이번 방문 동안 이 작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배급사 키노 인터내셔널 대표들과 <스캔들…>의 미국 수출 건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키노 인터내셔널은 과거 <취화선>과 <텔미썸딩>을 미국에 배급한 바 있다. 이같은 배급사들의 적극적인 자세는 과거와 다른 큰 변화로 눈길을 끈다. 특히 김 감독의 영화를 미주에 배급하는 소니픽처스의 경우 홍보에 적극성을 띠었다.

김기덕 감독, 소니픽처스와 미팅

<섬>과 <나쁜 남자> <해안선> 등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은 외국에서 임권택 감독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영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5회 이상 회고전이 열린 김 감독은 특히 미국의 경우 <춘향뎐>과 <취화선>을 개봉했던 임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2개 작품을 정식 개봉하게 된 연출가이기 때문. 이번 작품의 뉴욕 홍보 담당자 소피 글룩에 따르면 방문 기간 동안 김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타임 아웃 뉴욕>과 <빌리지 보이스> 등의 대표적인 뉴욕 주간지는 물론이고 , 인터넷 연예 사이트 ‘살롱 닷 컴’(Salon.com), <토론토 글로브> <보스턴 헤롤드> 등의 취재 요청이 잇따랐다. 김 감독은 작품 홍보를 위해 뉴욕 외에도 LA와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워싱턴 D.C. 등도 방문하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이렇게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

“영화는 관객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미국은 동양의 사상과 문화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며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 기간 중 소니픽처스와 이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 제작에 대해 미팅을 가졌다”고 밝혔다. 김 감독에 따르면 아직은 이른 단계이지만 아시안 정서를 다룬 영화 제작안에 대해 소니픽처스쪽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스크립이 준비되는 대로 더 자세한 내용을 논의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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