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일본대표 작가주의를 만나다
2004-04-16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강령>, <밝은 미래> 동시개봉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감독으로 꼽히는 구로사와 기요시(49)(사진)의 최근작 두편이 동시에 개봉한다. 2000년작인 <강령>은 개인 욕망과 가족 가치 사이의 균열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깔끔한 공포물이며, 2003년작 <밝은 미래>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젊음의 풍경을 따듯하게 그리면서 그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일본·유럽 영화는 홀대받는 상황에서 이 두 영화는 서울 코아아트홀에서 23일부터 번갈아 상영된다.

파국 부르는 욕망 ‘정교한 공포’

강령=녹음기사 사토(야쿠소 고지)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아내와 산다. 아내 준코(후부키 준)는 <식스 센스>의 꼬마아이처럼 죽은 사람을 보며,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기까지 한다. 어느날 사토가 숲에서 바람소리를 녹음하고 있는 사이에, 유괴된 소녀가 도망치다가 사토의 녹음기기를 담는 트렁크 안에 숨는다. 이를 모르는 사토는 트렁크의 자물쇠를 잠그고 집에 와 이틀 동안 방치한다. 아내 준코의 영감이 작동해 트렁크 속의 소녀를 찾아낸다. 다행히 소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준코는 소녀를 부모에게 돌려주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토에게 잔 꾀를 낸다. 제3의 장소를 경찰에게 알려주고, 소녀를 그곳으로 옮겨놓자는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3의 장소로 옮기기 전에 소녀가 사고로 죽고 궁지에 몰린 사토부부는 소녀의 시체를 야산에 매장한다.

좀더 화려하게 살고 싶은 중산층 부부의 욕망이 결국 파국을 불러오는 설정은 많이 봐온 것이다. <강령>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소녀의 시체를 묻고 괴로워하는 사토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준코의 능력이 저주받은 능력인 것만 같다. 그러나 마지막의 반전은 그 모든 걸 뒤집어 엎는다. 정말 불행은 그 저주받은 능력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데에 기인하며,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개인의 욕망은 부부애를 결정적으로 배신한다. 그 결론도 섬뜩하지만, 더 섬뜩한 건 결론을 넌지시 던져놓고 바로 영화를 끝내버리는 정교한 구성이다. 여운이 오래 가는, 잘 쓰여진 단편 소설 같은 느낌의 영화다.

불안한 청춘 향한 따뜻한 시선

밝은 미래=20대의 니무라(오다기리 조)와 마모루(아사노 다나노부)는 공장 동료다. 니무라는 자면서 이런저런 꿈을 꾸는 게 취미이고, 마모루는 독이 강한 붉은 해파리를 애지중지 키운다. 둘 다 자신의 삶에 미래를 어떻게 위치지워야 할지 모른 채 대충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얌전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공장 사장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해고된 마모루는 바로 그날 사장 가족들을 살해하고 감옥에 가서 자살한다. 혼자 남은 니무라는 극한의 불안 속에 방황하다가 마모루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조금씩 현실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밝은 미래>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20대 불안한 청춘을 바라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시선이다.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손가락질도 예찬도 하지 않는다. 자신도 답을 모르지만 그들처럼 괴롭고 불안하다는 듯한 태도로 그들과 함께 간다. “우리 자신이 주위를 비추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해파리처럼 자기 자신만은 빛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게 구로사와 기요시의 말이다.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이었던 후지 다츠야가 마모루의 아버지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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