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영락없는 무대 위의 시인, <마지막 늑대>의 배우 오광록
2004-04-19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사진 : 이혜정

프로필

1961년생·배우예술원 1기생·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 <발칙한 녀석들> <로베르토 쥬코> 등 출연·영화 <사월의 끝>(단편),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 <와이키키 브라더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올드보이> <마지막 늑대> <우리 형>

모처럼 미원맛 나지 않은 풋풋한 코미디를 만나 흐뭇해하는데,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다. 늘 대사없는 연기만 봐왔던 때문인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가 채 잊혀지기 전이었다. 마치 몸속에 거대한 서브 우퍼를 장착한 듯한…, 단둘이 방 안에 있으면 방 전체에 기분 좋게 웅웅댈 목소리를 가진 오광록(44)이었다. <마지막 늑대>의 출연 결정도 그 목소리 덕분이었다. <올드보이>의 고사가 있던 날, 오달수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옆자리가 다름 아닌 구자홍 감독이었는데, ‘이상하게 거슬리던 목소리’가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 느릿하면서도 단어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발음되는, 저 낮고 똑똑한 비음은 필시 그의 우뚝한 코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눈에 확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무게감과 소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존재는 “배우는 작가”라는 확실한 연기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을 연기자라고 하든 배우라고 하든 혹은 뭐라고 하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연기를 보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한다. 때로는 분노의 심정이 인다. ”그는 함께 일한 감독과 배우를 동지라 부른다. 스탭도 마찬가지다. 연기 속에서 사회 변혁을 꿈꾸는 그는 동지들과 함께 녹록지 않은 자기 수행을 묵묵히 진전시키는 중이다. 사회의 단면을,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것이 그의 작은 ‘운동’이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어느새 배우가 된 그는 여전히 시를 버리지 못했다. 중학교에 올라가 시인 혹은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지녔으며, 이제 그는 무대의 시인 혹은 자신 연기의 편집자가 되었다. “감독은 물론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배우가 감독의 연출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배우는 스스로 연출하는 사람이다. 지시받는 삶이란 얼마나 불편하고 퉁기어 나가고 싶은 것이겠는가.”

오광록이라는 작가를 알린 무대 중 하나는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다. 원작소설과 영화가 심의와 등급보류의 철퇴를 맞으면서 유명해진 연극은 외설과 예술을 탐하러 간 관객에게 당돌한 소녀 이지현과 묘한 분위기의 사내 오광록을 아로새겼다. 두편의 단편과 뒤이어 장편영화로 뛰어든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현구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여, <복수는 나의 것> <봄날의 곰…> <올드보이> 등에서 색다른 조연으로 등장했다. <마지막 늑대>에서는 문화재 전문털이로 등장하여 여전히 말수 적은,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다음 작품인 <우리 형>에서는 ‘인간 수면제가’라는 별명을 가진 사진반 선생님으로 나온다.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오늘도 시인으로, 작가로, 배우로, 운동가로 소박하지만 치열하게 변혁의 앞길을 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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