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범죄의 재구성> 정성일 영화 평론가
2004-04-20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털어먹을 놈이 테이블에 앉았다! 그 자체로 끝나는 거예요. 그 순간에 그거는. 문제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 얼매나 공을 들이느냐!” 최동훈이 열일곱번을 고치고 고쳐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속 얼매의 대사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딱 그렇다. 일단 입장료를 내고 영화관에 들어와서 스크린 앞에 앉으면 그 자체로 끝을 낸다.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하여튼’ 보게 만든다. 재미 있다. 대사 좋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돌아서면 갑자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섯 명의 사기꾼이 모인다. 이제 막 출소한 최창혁(박신양)은 전과 하나 없는 사기계의 전설 ‘김 선생’(백윤식)을 찾는다. 여기 잡학다식 떠벌이 ‘얼매’(이문식)와 사기결혼 킬러 ‘제비’(박원상), 화폐 위조기술자 ‘휘발유’(김상호)가 가세하고, 김 선생의 정부 ‘구로동 샤론 스톤’(염정아)이 얽힌다. 그들은 ‘드림 팀’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국은행을 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누군가 그 시간에 밀고한다. 베테랑 형사 차 반장(천호진)이 사건을 뒤쫓고, 죽은 최창혁의 형 최창호(박신양의 일인이역)를 중심으로 사건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영화는 정확하게 거기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절반을 둘로 나눈 다음 후반전이 전개되는 사이에 전반전이 에피소드별로 퍼즐 맞추듯이 나열된다.

머리와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눈을 흘리는 영화다

연기 앙상블은 감칠맛나며, 백윤식은 거의 숨막힐 정도이다. 박신양은 일인이역을 지나치게 뽐내고 있으며, 이문식은 대사의 달인이다. 염정아는 처음으로 피와 살을 가진 인형이 되었으며, 박원상과 (카메오로 출연한) 임하룡조차 빛이 난다. 다만 천호진은 항상 오버하거나 2퍼센트 부족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인용하자면) 카프카 아세요 이 영화에서 정말 좋은 것은 대사이지만, 가장 나쁜 것은 이야기이다. 부조리하다는 말이다.

최동훈은 대사를 갈고 닦기 위해서 공을 들였지만, 이야기는 대충 흘러간다. 우선 그 정도의 아이디어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행이 털릴 것 같지 않다(1996년 한국은행 구미지점 당좌수표 위조사건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다는 이 대목은 이 영화에서 가장 대충 찍은 장면이다). 그건 영화라 그렇다 쳐도, 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앞에 가던 차가 터널에 멈춰 서서 사람을 갈아치우는 동안 뒤에 오던 경찰 차가 ‘시침 뚝 떼고’ 정말 앞서 갈 수 있을까 얼굴을 다 뜯어고치는 성형수술을 하고 난 다음 그렇게 빨리 형 노릇을 하기 위해 회복될 수 있을까 (아! 지면이 부족하다) 그 질문을 한 다음 비로소 ‘범죄를 재구성’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트릭은 그 엉성한 이야기로 관객을 상대로 최(동훈) 선수가 접시를 돌리는 것이다. 참, 접시는 사기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대사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플래시백은 구조의 필연성이나 미학적 이유, 혹은 장르의 컨벤션이나 두뇌게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단 하나, 보는 내내 이 치명적인 약점으로부터 눈을 돌려 머릿속에서 이야기 전체를 다시 짜 맞추는 데로 정신 팔리게 만드는 데 있다. 게다가 영화가 중간에 시작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야기의 중간을 논리적으로 따져 볼 겨를이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머리와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눈을 홀리는 영화다. 눈은 항상 부주의하고 비논리적이며 우매한 감각이다.

그렇게 재구성이 끝나고 나면 서둘러 정리하는 이 영화의 엔딩은 갑자기 따분해진다. 사연은 구구절절하고, 벌려놓은 사건에 이유를 갖다 대기에 급급해진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차 반장을 끝내 웃음거리로 남겨놓고, 최창혁과 ‘구로동 샤론 스톤’이 새로운 사기를 시작하는 에필로그이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번 다음에도(50억원!) 왜 계속 접시를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접시돌리기는 취미인가, 운명인가 최동훈은 그게 하드보일드 장르 영화의 ‘쿨한’ 멋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 형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윤리적 중언부언은 무의미해지고, 남는 것은 접시밖에 없다. 거사를 앞두고 말한다. “청진기 대 보니까 진단이 딱 나온다. 시추에이션이 좋아.” 그래서 김 선생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치료이다. 재구성해보면 할수록 이 영화는 정말 ‘시추에이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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