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내용은 축약해놓은 게임 설명서 같다. 나미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산으로 저택을 물려받는다. 게임회사 사장인 전 애인과 함께 아버지의 저택을 찾아간 그녀는 아버지의 정체가 공포스러운 작품들을 남긴 전설적인 미술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로 같은 저택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아버지의 그림들, 그 이면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들과 나미의 쌍둥이 여동생의 존재를 조금씩 알아간다. ‘복수’라는 꽃말을 지닌 ‘오토기리소우’(고추나물)로 둘러싸인 저택에서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토기리소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흉내낸다. 대화창을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대사를 대신하기도 하고 카메라의 1인칭 시점도 자주 쓰인다. 디지털로 촬영된 영상은 강렬하게 보정된 색채와 불안감을 안겨주는 거친 입자가 색다르다.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을 맛보도록 설정되어 있다. 숨어 있는 열쇠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잠겨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설정은 가장 익숙한 RPG(Role Playing Game)의 기본적인 방식이다. 저택에 고립된 두 사람이 외부의 친구들과 대화하는 유일한 길은 인터넷과 휴대폰인데, 외부의 친구들은 두 사람이 찍어서 이메일로 보낸 영상을 토대로 저택의 입체지도를 작성하여 보내준다. 마치 게임을 플레이할 때 길을 잃으면 ‘지도창’을 띄워놓고 검색하듯이.
이런 색다른 시도들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 흥미로움은 순간적이다. 제작진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진정한 이유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이해했다. 관람자가 참여할 수 없는 게임이란 그 인터랙티브한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기에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의 모험담과 코헤이의 회사에서 제작한 게임의 엔딩을 뒤섞어버리는 마지막은 남은 긴장감마저 심드렁하게 풀어버린다. 물론 두 가지의 열린 결말을 모두 보여주는 나름의 재기발랄함도 있지만, 재기와 아이디어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갈 순 없다. 가토카와 쇼텐이 <이누가미>와 동시개봉하기 위해 만든 호러영화 <오토기리소우>는 영화와 게임, 두 아버지를 모두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로 족보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