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릴레이] <인 더 컷>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04-27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인 더 컷, 그 제목부터 물어보자. 상처 안에 무엇이 있는 걸까 혹은 무엇이 상처를 만들고 있는 걸까. 수잔나 무어의 동명의 스릴러 소설이 바탕이 되었는데, 소설처럼 영화는 열정적인 관객과 적대적인 그들을 동시에 생성시키는 것 같다. 영화의 제목 <인 더 컷>은 영화 크레디트 타이틀에서 스케이트 날이 잘라낸 빙판 조각을 의미하지만, 좀더 은유적으로는 상처, 혹은 외상 속에 웅크리고 있는 피로 물든 그 무엇이다.

제인 캠피온의 영화는 포스트 911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대량 파괴가 일어난 뉴욕의 디스토피아적 거리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연쇄 토막 살인이 일어나는 스릴러의 배경으로 완벽할 만큼 음산하다. 골목에 쌓인 검은 색 쓰레기 봉투는 갑자기 무엇이 터져 나올 듯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 보인다. 촬영 감독 디온 비브의 빛의 강한 대비와 골목들을 강조한 누아르적 화면과 대담한 커팅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공포의 민속지로 바꾼다.

불가능한 욕망의 구조속으로 풍덩, 동화 같기도하고 정신분석 같기도

도리스 데이의 ‘케 세라 세라’를 단조로 바꿔 노래하면서 영화는 시작하는데, 그 노래 속에서 소녀는 묻는다. “엄마, 난 자라 무엇이 될까요” 엄마는 답한다. “맘대로 하렴.” 그래서 정말 <인 더 컷>의 두 명의 여자들은 맘대로 한다. 연쇄 살인범인지도 모를 남자와 섹스에 빠지고, 기혼자와 사랑에 빠진다. 물론 여자들이 제 멋대로 살기에 세상은 잔혹하다. 그런 여자들을 살해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 남자가 있는 것이다.

이제 유년기를 함께 헤쳐 온 두 명의 여자들이 영화 안으로 소개된다. 프래니 (맥 라이언)와 폴린(제니퍼 제이슨 리)은 이복 자매로 서로에게 다정하고 솔직하다.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제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콧소리를 섞어 말하고, 금방 무너져내릴 듯하지만, 제멋대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은 예의 애교스런 콧잔등 주름을 버리고, 슬랭(비속어)과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탐닉한 영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가벼운 성애 판타지와는 달리, <인 더 컷>은 강성이다.

지하철의 모든 글자들을 다 읽고 다니는 프래니는 슬랭 수집차 바에 들렸다가 한 여자와 팔에 문신을 한 남자가 오럴 섹스에 빠져있는 것을 목격한다. 연쇄 살인 수사를 위해 자신을 찾아온 형사 말로이(마크 러팔로)의 손목에서 그 문신을 발견한 프래니는 자신이 응시한 장면, 그 행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때문에 말로이에게 끌린다. 거침없이 남성적 슬랭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행위에 대한 약속 때문에 프래니는 말로이라는 위험한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떠나지 못한다.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기는 제니퍼 제이슨 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낳았던 어머니를 생각해 한번만이라도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기혼자를 사랑한다. 이렇게 불가능한 욕망의 구조 속으로 빠져드는 두 사람에 대한 배경으로 영화는 동화 같기도 하고 정신분석 같기도 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프래니의 어머니가 낭만적으로 구애받던 장면이 재생되면서, 아버지의 스케이트 날은 어머니의 다리를 세 동강으로 자른다. 이성애적 사랑의 양날, 낭만과 잔혹, 매혹과 죽음이라는 이중무가 악몽의 동화로 재연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프레니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를 둔 폴린의 상처가 이런 이성애의 근본적 외상에 더해지면서 영화는 자기 설명을 마친다. 제인 캠피온은 스릴러 <인 더 컷>을 <클루트>(앨런 파큘라, 1971)의 선상에서,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하고,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맥 라이언의 이미지를 전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영화를 장르 신봉주의자와 반여성주의자로부터 구출한다. 주류 속에서 주류에 대한 치명적 도전이다. 인 더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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