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인터뷰] <효자동 이발사> 송강호
2004-04-28

“체제나 이념이 얼마나 부질없나 느낄 것”

이건 분명 송강호의 영화다. 본인은 즉흥성을줄였다지만 그의 손짓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효자동 이발사>의 주인공은 우연히 대통령의 전속 이발사가 된 평범한 남자 성한모. 카메라는 1960년 3.15 부정선거부터 79년 12.12사태까지20여년간 세상에 휩쓸리는 이 이발사의 뒤를 좇는다.

국가가 하는 일은 항상 옳다는 순진함. 옆집 연탄가게 아저씨에게 쉽게 굴복하는 비겁함. 각하의 목에 면도칼 자국을 내 놓고 벌벌 떠는 소심함. 이 모든 것과 함께 무엇보다 자식에 대해서는 끔찍이도 아끼는 마음을 간직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은'효자동 이발사'에서 송강호를 통해 관객의 가슴을 후벼댄다.

26일 이 영화의 기자 시사회 직후 주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높은 톤의웃음과 장난기 있는 눈빛에 때때로 차분해지는 목소리까지 영화 속의 모습과 별반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는 <효자동 이발사>에 대해 "체제니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살아가는 데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송강호와 나눈 일문일답

-지난번(살인의 추억)에는 80년대가 배경이더니 이번 영화에서는 60~70년대로거슬러 올라갔다.

=딱히 그 시대의 얘기가 좋아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그렇게됐다. 과거에 대한 향수나 무슨 아픈 기억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실제 아들이 영화 속 아들 낙안이보다 한 살 어린 아홉 살이다. 따라서 딱히 생경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때의 자식 사랑은 요즘의 그것과 다른 게 있다. 요즘에는 부모가 건강하라거나 거짓말 하지 말라는 식의 얘기를 하지만 당시에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이 다였다. 당신들은 가난하고 못 배웠어도 아이들은 좀 더 낳은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정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감정의 깊이였다. 그 어려운 시대아버지들의 선 굵은 그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재미있는 대사가 많다. 즉흥 연기(애드리브)가 많았던 편인가

=손짓 정도는 있었겠지만 대사는 한 마디도 없다. <살인의 추억> 때는 캐릭터형성을 위해 애드리브가 필요했지만 <효자동…>에서는 즉흥 대사가 없을수록 좋다고 판단했다. 배우가 웃겨야지 하는 의도를 가지면 건강한 웃음이 못 되는 것 같다. 순간의재미를 좇으며 얄팍한 웃음을 만들다보면 성한모라는 캐릭터의 순수성은 훼손될 것이라 생각했다. 성한모는 개성이 강한 인물이기보다 그 시대 아버지를 대표하는 인물 아닌가. 특징이나 색깔을 띨수록 작품에는 훼손되는 것이다.

-그 시절 본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게 남아 있나.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힘들게 당시를 살아오신 분이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보통의 아버지이셨다. 아버지는 화가로 어릴 적 교편을 잡으신 적도 있다.

-1967년생이니 영화 속 낙안이보다 일곱 살 정도 어린 셈이다. 어릴 적 추억은어떤 게 있나.

=초등학교 때 유신헌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뇌교육을 받던 게 생각난다. 당시를 생각하면 북한과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를 가도 유신 얘기뿐이었으니까. 획일화한 독재사회였다는 잔상 정도가 남아 있다.

-관객들은 송강호라는 배우를 영화에서 보면 일단 웃음부터 나오는 듯하다.

=칭찬인 것 같다. 이전 작품들을 통해 나에 대해 유쾌한 느낌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넘버3> 후 한동안 그 영화의 이미지가 상당히 오래가더라.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영화) 때문에 (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좋지만 (다른 모습을) 알아줬으면 하는 배우로서의 욕심도 있었다.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올 것 같다. 시나리오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요즘은 예전과 패턴이 달라져 작품이 들어가려면 한참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친다. 내 경우도 기획단계에 캐스팅되기 때문에 지금도 다음 작품들이 결정돼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효자동…>의 경우는 영화사나 나나 모두 운이 좋았다. 타이밍이 잘 맞았다는얘기다. <살인의 추억>이 끝나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너무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작가의 목소리가 높지 않으면서도 근대사에 대한 강렬한 아픔과 넉넉한 웃음을함께 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좋았다. 좋은 시나리오이고 내게 맞을 역이면, 그리고스케줄이 맞으면 영화 출연을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차기작 <남극일기>에서는 맡은 탐험대장 역은 한동안 봐왔던 역할과 달라보인다.

=<효자동…>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할리우드 산악영화와 달리 드라마가 강한영화다. 등장인물이 여섯 명이니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하다. 한 달 후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새 영화] <효자동 이발사>

좀처럼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송강호의 연기, 1960~70년대 근대사와 시대상의 맛깔스러운 재현,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소시민의 '모험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감동…. 올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관객들의 이런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

예전과 같은 패턴이지만 송강호의 코미디 연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유쾌해 보이고 그가 보여주는 감동적 아버지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게 코미디와 섞여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자리에 다른 배우를 대입시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다운 인물을만들어 내는 것은 변함없는 송강호의 장점이다.

여기에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 민자 역을 맡은 문소리의 연기도 부족한 게없어 보이고 윤주상이나 정규수, 오달수 등 연극 쪽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마을 사람들 캐릭터도 탄탄하다.

영화의 시작은 사사오입 개헌이 있은 지 몇년 뒤인 1960년. 효자동의 왕씨네 만둣집에는 이발사 한모와 면도사 민자가 실랑이중이다. 민자는 한모의 애를 임신한 지 5개월. 한모가 애를 안 낳겠다는 민자를 설득하는 논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이다.

"뱃 속의 애가 다섯 달이 넘으면 낳아야 된다는 얘기야." 카메라는 이후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등으로 시대 배경을 옮겨가며 한모의뒤를 따라간다. 그저 나라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일 거라며 3.15 부정선거에 한몫했던한모. 4.19혁명이 있던 날은 아들 낙안이가 태어난 날이다.

여태까지 평범하지 않던 역사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모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5.16 쿠데타가 있은 지 얼마 뒤. 대통령 경호실장의 눈에 든한모는 이제 대통령의 전용 이발사 생활을 시작한다.

소심한 동네 이발사가 군인 출신 대통령을 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 가르마 타기는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면도할 때는 또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간혹 대통령과함께 하는 술자리나 가족 동반 식사 자리도 가시방석이다.

전반부에는 캐릭터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웃음을 전달하던 영화는 아버지 성한모의 아들 사랑이 강조되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감동과 판타지를 섞어 놓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전환이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감독은 데뷔작에서 자신이 직접 쓴 탄탄한시나리오를 매끄럽게 화면 위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달 5일 개봉.상영시간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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