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주말극장가] ‘장르의 성찬’ 즐거운 고민
2004-04-30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이번주 주말 극장가 상차림은 일단 많은 반찬 가짓수가 눈을 즐겁게 하는 푸짐한 한정식같다. 한국, 할리우드, 일본, 유럽 등 산지도 각각이고 액션, 애니메이션, 로맨틱 코미디, 심오한 작가주의까지 맛도 다른 작품들이 칠첩반상으로 놓여 어디로 먼저 젓가락질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한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류승완 감독의 신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이다. 현대의 도시에 사는 도인들의 이야기라는 황당한 발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대도시의 고층빌딩에서 몸을 가볍게 날리는 경공과 장풍이 등장하는 새로운 형식의 무협물이다. 도시와 도인의 대비, 순진하고 어눌한 액션영웅이라는 부조화가 영화의 전반을 이끌어가며 톡톡 튀는 대사의 발랄함이 영화 이곳저곳에 웃음의 지뢰를 묻어놓고 있는 발랄한 액션물이다.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이미 여성관객들에게 살짝 선보인 제인 캠피언 감독의 <인 더 컷>은 여성의 욕망을 대도시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연결시켜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한없이 건조해보이는 일상을 사는 여교수가 낯선 남자로 인해 숨었던 관능의 욕망을 발견하면서 잔인한 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깜찍공주로만 등장했던 멕 라이언의 180도 연기변신이 인상적인 영화다. 작가주의 영화팬이라면 무엇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번이나 받은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개봉이 반가울 듯. 성과 생에 대한 노감독의 흥겹고 여유만만한 찬가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족 관객을 겨냥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괴물잡는 강아지 스쿠비 일행의 소동을 그린 <스쿠비-두 2: 몬스터 대소동>도 밥상에 올라있다.

개봉 신작 리뷰
<스타스키와 허치> 70년대 투갑스 ‘얼렁’개그 ‘뚱땅’ 액션

70년대말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였던 <스타스키와 허치>의 극장판 리메이크로 벤 스틸러, 오언 윌슨이라는 스타 배우 두명이 출연한다. 그렇다면 화려한 액션, 속도 빠른 개그, 정치한 플롯을 갖출 법한데 이 영화는 이 중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시대 배경을 원전과 똑 같이 70년대로 하고, 통 넓은 판타롱 바지, 빨간 토리노 자동차, 디스코춤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이해가 간다. 향수를 자극함과 아울러, 70년대의 풍광을 그대로 옮겨왔을 때 일어나는 시대착오적인 불균형의 맛이 이 영화와 어울린다.(아무리 70년대식으로 입어도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은 요즘 사람 같다.)

그런데 이야기나 개그, 액션이 설렁설렁 흘러간다. 스타스키(벤 스틸러)와 허치(오언 윌슨), 두 형사가 파트너가 된 날 베이시티 해안에 시체가 떠오르고 그걸 수사하다가 악질 마약상과 대면하게 되는 줄거리는 평이함 그 자체다. 두 형사의 캐릭터 대비나 둘 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버디 영화의 장치들을 집어 넣었지만 이걸 요즘 감각으로 가다듬는 일 따위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배짱이 있는 영화다. 원전이 버디무비의 고전인데, 가공할 게 뭐 있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같다. 그게 밉지 않은 탓에, 심심하고 약간은 썰렁한데도 나름의 유머와 리듬감이 전해진다.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의 궁합이 잘 맞아서 텔레비전물처럼 둘의 얼굴을 나란히 잡는 화면들을 넉근히 버텨낸다. 오리지널 스타스키와 허치인 폴 마이클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솔이 깜짝 출연한다. 지난해 나온 주책맞고 기이한 코미디 <올드 스쿨>의 토드 필립스가 감독했다. 30일 개봉.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엄마의 애인이 젊은 여자‥혹시 나도?

일이면 일, 연애면 연애,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 없는 젊은 여성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 아빠와 이혼하고 오랜 세월 독신으로 살아온 엄마의 생일 파티에서 엘비라 세 자매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박수를 치며 축하하는 사이 짜잔! 하며 들어온 엄마의 애인. 겨우 자기 또래에다 심지어 여자다. 눈을 의심한 세 자매는 엄마의 진심까지 의심하며 두 사람 갈라놓기 작전에 들어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사지 멀쩡하고 얼굴도 남에게 밀리지 않는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건. 엘비라의 이런 고민 위에, 엄마로 인해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한 의심까지 겹친다. 감수성 예민하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연애도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다 결국 내리는 결론. “내 복에, 얼어죽을 무슨 연애.” 그러나 엘비라가 몰랐던 게 있다. 스스로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만사를 미리 재단해왔던 게 자신을 연애 뿐 아니라 삶 자체로부터 소외시키고 주변부로 밀어내 왔다는 걸.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동성애, 결혼, 가족제도 등 쉽지 않은 소재들을 끌어오면서도 물 흐르듯 경쾌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네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그러는 사이에 엘비라는 자신이 쌓았던 견고한 성의 문을 하나씩 열고 삶을,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복은 그와 함께 따라온다. 어려운 전제들이 너무 술술 풀려가는 이야기가 판타지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이 거북하진 않다. 고민의 짐에 눌려 허리가 휘는 젊은 여성이라면 영화가 다정한 격려의 손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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